한반도 종전선언이 북미 간 비핵화 논의 진전의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 과정에서 주요 관련국 모두에게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책임과 의무가 부과될 수 있지만 동시에 미중 간 힘겨루기의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중국이 종전선언 단계에서부터 참여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는 듯한 양상이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가진 뒤 “종전선언 진행 상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시점과 참여 주체 등에 대한 논의 내용은 함구했지만 양국이 종전선언 문제를 공식 외교경로로 논의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한국 외교부 고위관료를 인용해 “한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 중국이 초기부터 참여하는 것을 용인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고위관료는 “당초 한국은 남북미 3자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 단계에서 중국이 참여하길 원했지만 이제 비공식적으로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큰 변화”라고 말했다.
중국도 종전선언 참여 의사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2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해 “종전선언은 모든 관련국의 협상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한 축인 중국의 참여가 필수라는 얘기다. 앞서 지난달 중순 양제츠(楊潔篪)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비밀리에 방한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것을 두고 양국이 종전선언 문제를 집중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이 무성했다.
실제 주변국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정 안보실장은 양 국무위원을 만난 직후 예정에 없던 방미길에 올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고, 중국은 양 국무위원의 비공식 방한을 수행한 쿵 부부장을 곧바로 북한에 보냈다. 이는 한중 간 논의에 이어 각각 한미와 북중 간에도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문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됐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ARF에서 남북미중 4자 외교장관들 간 교차회담이 진행된 뒤 이날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가 만난 건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문제가 공식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정전협정 당사자인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미중 양국이 한반도 영향력 확대 경쟁을 벌일 경우 전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문제다. 대북 영향력을 회복해가고 있는 중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할 경우 주한미군 철수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철회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SCMP의 분석은 이 같은 우려의 반영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 역할론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지와 관련된 문제”라며 “우리 입장에선 중국에게 좀 더 건설적이고 책임있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한반도가 미중 간 패권 경쟁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을 열어놓는 측면도 있어 앞으로 한미 간 긴밀한 의견 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