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폼페이오 “제재 오늘부터 시행”
외환 등 이어 11월엔 원유 제재도
유럽 기업도 美 눈치… 사업 철수
# 물가 폭등… 금값도 두 배로 껑충
주요 도시선 반정부 시위 계속
이란軍은 호르무즈해협 차단 훈련
미국 정부가 이란 핵 협상(JCPOA) 탈퇴 후속 조치로 그간 연기해 왔던 경제 제재를 7일부터 순차 재개하며 ‘고사작전’에 돌입했다. 아직 제재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는 등 이란 정국은 폭풍으로 휘말려 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방문 후 미국으로 복귀하던 중 기자들에게 “미국은 이란 제재를 예정대로 시행할 것”이라며 이란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이나 러시아 등의 협조를 구하려는 노력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란도 강경한 태세를 취하고 있다. 혁명수비대(IRGC)는 3일부터 5일까지 중동의 핵심 석유 보급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해ㆍ공군 합동 훈련을 시행해 무력시위를 했다. 이들은 제재가 본격화할 경우 해협을 차단하겠다는 위협을 가한 바 있다. 그간 이란을 향해 압박 일변도 자세를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라고 발언해 국면 전환을 시도했지만, 현재로서는 ‘강 대 강’으로 대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7일 오전 12시(미국 동부시간ㆍ한국 7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미국의 제재는 이란 정부와의 외환거래, 귀금속 거래, 자동차ㆍ비행기 부문 수출 등을 금지ㆍ제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는 기업들은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 대상이 된다. 11월 5일에도 이란 국영석유회사로부터의 원유 수입이나 이란중앙은행 등과의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제재가 시행된다.
제재는 아직 시작도 않았는데 이란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금괴와 금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일 국제금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2분기 이란의 금 수요는 총 15.2톤으로 파악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란중앙은행이 찍는 8.13g짜리 에마미(Emami) 금화가 5일 3,600만리알에 거래됐다. 연초의 2배 가격이다. 금값이 뛰면서 판매자마저 금을 파는 것을 주저하는 상황이 됐다.
금 수요가 늘어난 것은 이란 화폐인 리알화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리알화의 실거래가 추적 웹사이트인 봄바스트에 따르면 연초 달러당 4만3,000리알에서 현재는 달러당 10만리알 전후까지 떨어졌다. 이란중앙은행은 4월부터 환율을 묶어 리알화 가치 하락을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암거래만 늘리는 역효과로 이어졌다. 결국 이란 정부는 5일 중앙은행의 환율 고정 정책을 일부 포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리알화 가치 폭락에 따른 물가폭등은 이란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를 자극하고 있다. 이란 정부의 강력한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2일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이스파한ㆍ시라즈ㆍ마슈하드 등 주요 도시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시민들의 시위는 서방과의 협상을 적극 추진한 하산 로하니 행정부의 곤궁한 처지를 보여준다. 당초 대미 협상에 반대했던 혁명수비대 등 강경파는 물론 경제 발전을 기대했던 핵심 지지 세력 중산층마저도 로하니 대통령에 등을 돌렸다는 표시기 때문이다. 정부가 외환 관련자들을 경제사범으로 체포하며 민심 잡기에 나섰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미국의 일방 탈퇴에 맞서 이란 핵 협상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EU도 곤란한 처지에 처했다. 유럽 기업들이 미국 눈치를 보며 이란에서 발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푸조와 시트로앵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는 프랑스 자동차 PSA그룹, 르노 등이 대이란 신규투자를 중단했다.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과 항공기 생산기업 에어버스, 덴마크 해운기업 머스크, 독일 전자기업 지멘스 등도 이란에서 사업 철수 수순에 돌입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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