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감독이 만든 영화 속 캐릭터들은 비중을 막론하고 모두 사랑스러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윤종빈 감독에게 '애정이 가는 캐릭터 베스트 3'를 꼽아달라는 다소 가혹한(?) 부탁을 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군도: 민란의 시대' 그리고 '공작'을 연출한 윤 감독은 "너무 어려운데…"라는 말을 반복하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베스트 3'가 아닌 '베스트 4'를 꼽았다.
◆ '비스티 보이즈'-재현
윤종빈 감독: "재현은 너무 찌질한 앤데 밉지가 않아요. 물론 하정우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거기도 하지만, 너무 나쁜 놈인데 사람 같다는 게 매력이죠. 인간적인 모습이 좋아요."
'비스티 보이즈'(2008)는 강남의 호스트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하정우, 윤계상이 호스트바 종업원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극중 하정우가 연기한 재현은 거친 성격을 지닌 호스트로, 온갖 말썽을 일으키는 인물. 하지만 재치 있는 입담과 미워할 수 없는 인간미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 '군도'-조윤
윤종빈 감독: "조윤은 제가 어릴 때부터 너무 좋아하는 만화 '리니지' 캐릭터를 차용한 캐릭터에요. 그래서 좋아해요! 영화에 잘 옮겨진 거 같기도 하고요."
'군도: 민란의 시대'(2014)는 탐관오리들이 판치던 조선후기, 세상을 뒤집기 위해 나선 의적들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
극중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은 나주 대부호인 조 대감의 서자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백성들을 상대로 악행을 저지른다. 개봉 후, 강동원의 긴 머리 비주얼이 화제를 낳기도 했다.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조윤이 머리 풀리는 장면이 실제 대본에 있었다. 더 악랄하게 보이게 하고 싶었고 어떤 변환점 같은 장면이라 할 수 있다"며 "'백발마녀전'이나 '천녀유혼' 같은 서늘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 '공작'-흑금성 & 리명운
"흑금성은 본심을 드러내지 않고 한 시간 반을 끌고 가는 캐릭터입니다. 이게 상당히 어려운 거거든요. 한 시간 반이 지나야 비로소 이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어요. 예전부터 이런 인물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리명운은 우리가 소위 얘기하는 츤데레죠. 그래서 너무 좋아요.(웃음)"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극이다.
실존 인물인 박채서를 모티브로 한 스파이 박석영 역할은 황정민이 맡았다. 리명운은 북의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대외경제위 처장으로, 이성민이 연기했다.
두 배우는 '공작' 촬영에 임하며 그 어느 때보다 연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소위 '구강액션'이라 불릴 만큼, 말로 액션을 펼쳐야 했고 대사로만 긴박감을 나타내야 했다. 배우뿐만 아니라 감독에게도 외롭고 힘든 작업이었다.
이성민은 이 영화를 마친 뒤에 "많은 토론을 통해 캐릭터를 완성했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미숙해서 미안했다. 스태프들과 감독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겸손을 표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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