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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정(情)의 재발견

입력
2018.08.06 18:47
수정
2018.08.06 21: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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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漢文)이 특히 어렵다는 것은 앞서 영어, 독일어 공부를 해 본 개인적 경험에서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 까닭이 꼭 ‘얼마 전’을 뜻하는 ‘曩(낭)’이나 ‘왁자지껄’을 뜻하는 ‘囂(효)’ 같은 난삽한 글자 때문만은 아니다. 한문 공부를 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한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情(정)’이다.

우리의 경우 “한국 사람은 정(情)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 사는 정이 이래야지” 등의 말을 통해 ‘情’ 자를 만나게 되고 “한 개만 주면 정이 없으니 한 개 더 줘야지”라고 하면서 정의 뉘앙스를 배워 간다. 참, 학교에서는 사단칠정(四端七情)이라며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의 일곱 감정이 정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정작 한문 고전을 읽게 되면 ‘情(정)’은 사실, 실상, 진실이라는 뜻으로 새겨야 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 흥미롭게 읽으며 번역 중인 책이 있는데 후한 시대의 인물인 왕부(王符)가 지은 ‘잠부론(潛夫論)’이다. 마치 ‘논어’와 ‘한비자’ 그리고 ‘순자’를 종합해 놓은 듯해서 성리학의 교조에 갇힌 공리공담 유학에서 벗어나 실질 유학을 보여 주는 것과 같아 40도 무더위를 잊게 만들어 준 책이기도 하다. 그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무릇 나라를 통치하는 자(制國=治國)는 반드시 멀고 가까운 곳의 실상과 거짓(情僞)을 깊이 뚫어 보고 화복(禍福)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미리 살펴서 이에 여러 신하들의 가진 힘과 능력을 죄다 여기에 쓰게 해야만 그 나라를 보전하고 크게 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情僞(정위)’를 감정과 거짓으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네 한문번역 수준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에도 실상이란 뜻을 담은 정(情)자도 많다. 사정(事情), 일의 실상이다. 정상(情狀)이나 정황(情況), 정보(情報) 등도 다 ‘실제 일어난 일’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정(情)을 감정(感情)과 동일시하는 흐름에 빠져든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감(感)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희(喜)’, 기쁨을 살펴보자. 그것은 사단(四端)의 인의예지(仁義禮智)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어질다 혹은 어질지 못하다, 의롭다 혹은 의롭지 못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칠정(七情)의 하나인 희(喜)의 경우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저 사람은 기뻐하는 사람이다 혹은 저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

희(喜)라는 감(感)은 잠재돼 있다가 외부 상황이 그에 걸맞을 때 순간 겉으로 표출되는 것일 뿐이다. 그 표출된 순간이 바로 실제이며 그것이 곧 정(情)이다. 기뻐해야 할 때 슬퍼하고 슬퍼해야 할 때 기뻐하는 것은 감(感)은 그대로이지만 정(情)은 실상과 동떨어진 것이다. 결국 감정(感情)이라고 할 때에도 실은 정(情)은 여전히 실상이고 감(感)은 느낌인데 감정, 감정 하다보니 정(情)이 感(감)의 뜻까지 대신해 버린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최근 당대표 선거과정에서 “최저임금을 고리로 경제위기론을 조장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 속내(下情)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거짓 구호와 망상(僞)에 사로잡혀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벌써 잊어 가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걱정스럽다. 국민이 진정 기쁠 때 지도자도 기뻐하고 국민이 힘들 때 지도자도 함께 힘들어 하는 것, 그것이 친민(親民)이다. 그거 못했던 전직 두 대통령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국민들 대부분은 많이 힘들다. 갑자기 형편 좋아진 사람들이라고는 정권 창출에 기여해 국가기관에 둥지를 튼 캠프 세력 뿐이다. 큰 것 안 바랄 테니 제발 정권 잡았다고 남들 다 보는데서 그만 좀 웃으면 고맙겠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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