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8월 8일 새벽, 한 패거리가 영국 글래스고발 런던행 왕립 우편열차를 털어 260만파운드(현 시세 5,000만파운드)가 든 행낭 125개를 털어 달아났다. ‘대열차강도(Great Train Robbery)’라 불리는 저 희대의 사건은, 기관사 한 명이 쇠파이프에 맞아 후유증으로 숨지긴 했지만 범인들이 무기조차 소지하지 않은 점, 체포한 일당들로부터 현금을 거의 회수하지 못한 점, 주범 다수에게 30년 형의 이례적인 중형을 선고한 점, 일당 중 두 명이 1년여 만에 탈옥해 장기간 자신들의 ‘무용담’을 상품화하며 공권력을 조롱한 점 등이 겹쳐 인상적인 후유증을 낳았다.
그들의 수법은, 선로 신호기를 조작해 열차를 멈춰 세운 뒤 미리 파악해둔 열차 칸의 현금만 털어 대기시켜 놓은 차량으로 도주해 뿔뿔이 흩어지는 거였다. 실행팀과 지원팀 등 모두 17명이 가담했고 그중 일부는 단순 보조역이었지만, 모의 단계에서 범행 정보가 전혀 새지 않은 점도 이례적이었다.
법원의 형량은 도난 현금을 회수하지 못한 데 대한 괘씸죄까지 보탠 결과라는 비판이 있었다. 64년 8월 주범 중 한 명인 찰스 윌슨이 탈옥하고, 11개월 뒤인 65년 7월 로널드 빅스(Ronald Biggs)가 노끈을 엮어 만든 밧줄로 감옥 담장을 넘어 도주, 공권력의 위신은 또 한 번 추락했다. 범인들을 영웅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캐나다로 도피했던 윌슨은 68년 1월 다시 체포돼 수감됐지만, 빅스는 프랑스와 호주, 파나마를 거쳐 7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정착했다. 그는 자기 몫의 돈으로 성형수술을 하며 숨어 지내다 나중엔 아예 신분을 밝히며 열차 강도 이야기를 상품화해 기자나 관광객들로부터 돈을 벌었고, 펑크밴드 ‘섹스 피스톨스’와 음반을 취입하고,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판매하기도 했다. 영국 당국은 여러 차례 그를 강제 송환하고자 했지만 브라질과는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노쇠해진 뒤인 2001년 자진 귀국해 수감됐다가 2009년 8월 석방됐고, 2013년 12월 별세했다. 중풍을 앓던 그의 가석방 요청을 매번 불허한 데는 기관사를 숨지게 한 데 따른 기관사노조의 반대도 작용했다고 한다.
대열차강도는 숱한 루머를 낳았고, 범인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보도에는 번번이 소송을 걸었다. 범인 중 네 명은 끝내 체포되지 않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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