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ARF서 北 리용호 만나 납치문제 해결 타진
아베, 비핵화 교착ㆍ3연임 유력에 서두르지 않아
일본 정부가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간 논의가 교착상태에 놓이면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계기로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장관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접촉을 시도할 방침이다. 그러나 6ㆍ12 북미 정상회담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의 조속한 추진을 강조했을 때에 비해선 그다지 서두르지 않는 모양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요청으로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거론할 때만 해도 북일대화는 탄력을 받는 듯 했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지도력이 있다”며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 정부도 9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일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검토해 왔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이후 1개월 반이 지났지만 핵 물질ㆍ시설 신고와 종전선언을 둘러싼 북미 간 밀고 당기기가 반복되고 있다. 비핵화 논의의 진전 없이는 국제사회의 대북경제 제재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경제 지원을 고리로 납치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구상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북한도 미국으로부터 종전선언을 이끌어내는 게 급선무다. 때문에 아직은 일본의 움직임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동신문은 지난달 4일 논평에서 아베 총리와 고노 장관의 이름을 거론하고, “납치문제를 가지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있다”며 “일본이 과거 청산문제를 뒷전으로 미뤄놓으려고 하는 한 언제 가도 지역에서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내적으로는 아베 총리의 입지가 강화하면서 납치문제를 앞세운 국면전환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아베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 추진을 언급한 시기는 사학스캔들로 인한 지지율 하락과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이른바 ‘재팬 패싱’ 우려가 제기된 시기와 맞물린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오는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3연임이 유력해졌고, 납치문제의 진전을 담보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를 이유가 사라졌다. 총리관저 주변에서도 9월 동방경제포럼과 유엔총회에 김 위원장의 참석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실정이다.
다만 일본 정부는 이번 ARF회의가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고위급과 처음으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고노 장관은 3일 만찬을 활용해 북한 측과의 대화를 모색할 예정이다. 만약 북일 외무장관 회담이 이뤄질 경우 북한 측 반응을 통해 북일 정상회담의 실현 여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전망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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