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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활동 대가 ‘토큰’ 캐서 후원금 펀딩… 직접 민주주의 성큼

입력
2018.08.06 04:40
수정
2018.08.13 17:4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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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청년들 ‘폴리폴리’ 프로젝트

“유권자들은 변하고 있는데…

구시대 정치 시스템 바꿔보자”

게이오대 청년 6명이 앱 제작

생산적인 정치 의견 낼수록

신뢰점수 얻어 ‘토큰’ 획득

비방과 욕설 걸러지는 효과에

기존 정치자금 부작용도 극복

이토 카즈마 폴리폴리 대표가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폴리폴리 어플리케이션을 보이며 작동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손효숙 기자
이토 카즈마 폴리폴리 대표가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폴리폴리 어플리케이션을 보이며 작동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도쿄=손효숙 기자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정치인과 유권자를 연결하는 21세기형 정치 플랫폼 실험은 일본에서도 진행 중이다. 특히 정치 활동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토큰(Token)을 정치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정치 펀딩 시스템의 구현, 이른바 ‘토큰 민주주의’의 탄생이다.

일본 게이오대학에 재학 중인 19세 청년 6명이 실험 중인 ‘폴리폴리(PoliPoli)’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 지바현 이치카와시에서 치러진 중의원 선거를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18세로,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있던 이들은 온라인 상에서 선거 관련 정보를 찾기가 의외로 힘들다는 점에 놀랐다. ‘유권자들은 변하는데 정치는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자각은 유권자의 관심사를 담아낼 새로운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진단으로 이어졌다.

평소 인터넷 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이치카와시 시장 선거에 나선 5명 후보를 일일이 접촉해 후보자 신상과 공약 등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앱은 1,000여명의 시민들이 가입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들은 앱을 운영하면서 유권자가 단순한 정보 습득에서 나아가 보다 능동적인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 참여의 질을 높여야 하는 숙제도 더해졌다. 이토 카즈마(19) 폴리폴리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혁신적인 처방, 블록체인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달 16일 도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토 대표는 “블록체인은 가상통화를 거래하는 기술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상용화될 보편적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블록체인 정치 플랫폼을 만들고 그 위에 보상 토큰으로 운영되는 토큰 경제를 적용하자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고품질 정치 생태계를 꿈꾸다

폴리폴리는 블록체인 기반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고품질의 정치 생태계를 표방한다. 밑그림은 중간 개입자가 없는 탈중앙화된 플랫폼과 자체 토큰을 통해 새로운 정치 펀딩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이 생태계의 핵심은 정치 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로 주어지는 토큰 ‘폴린’(Polin)이다. 자신의 성별과 나이 등 정보를 등록하거나, 토론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매겨지는 ‘신뢰 점수’를 통해 얻을 수 있다. 토론방은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자유롭게 개설이 가능하고 자율 운영에 맡겨진다. 다양한 정치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고 생산적일수록 높은 신뢰 점수가 따라온다. 신뢰 점수는 공동체의 평가에 따라 매겨진다. 기존 정치 토론방의 고질적 문제였던 비방과 욕설 등을 걸러내기 위한 장치다. 암호 연산을 풀어 가상화폐를 채굴하듯 플랫폼 내에서 참여를 통해 토큰을 획득하고 상호 감시로 자체 정화가 되는 방식이다.

참여와 평가를 통해 얻은 폴린은 정치인을 후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화폐의 지위를 얻지 못해 폴린을 사용할 수 있는 업체들을 통해 간접 지원을 하는 식이다. 이토 대표는 “스타트업 기업의 토큰은 신뢰성의 문제 때문에 당장 상장이 어렵다”면서 “상장하기 전까지는 현실 통화 개념이 아닌 포인트를 쌓아서 업체를 통해 서비스로 환원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상장이 되면 시중의 통화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직접적인 후원이 가능해진다.

정치활동을 통해 받은 보상으로 유권자가 직접 정치인을 후원하는 시스템은 기존 정치자금 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일단 소액 다수의 정치후원이 일상화되고 내역을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다수 선진국은 정경유착 폐단을 막기 위해 정치자금의 모금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사용에 대해서도 감시가 심하다. 일본의 경우 정치인들은 주로 정당을 통해 기부금을 모금하는데 내역이 잘 공개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토큰 후원이 활성화되면 소액 기부 문화가 확산되고 정보공개 청구 등의 작업을 거치지 않고도 후원한 토큰의 쓰임새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토 대표는 “유권자들은 자신의 권한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정치인 스스로도 특정 후원세력에 얽매이지 않게 돼 시민의 요구를 반영해 투명한 정책을 펼 수 있다”면서 “블록체인은 결국 더 좋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폴리폴리의 구성원들이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바 히로시, 이토 카즈마, 야마다 진타, 쿠라타 류세이. 폴리폴리 제공
폴리폴리의 구성원들이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바 히로시, 이토 카즈마, 야마다 진타, 쿠라타 류세이. 폴리폴리 제공

유권자 2,000여명 모인 1차 시험대

폴리폴리는 지난달 초 플랫폼 베타 버전을 선보였다. 현재까지 2,000여명의 유권자들이 가입했다. 폴리폴리 측은 올해 후반기 보완을 거쳐 연말쯤 완성본을 출시하면 당장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정치 실험에 대한 일본 내 기대는 크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정치 펀딩 방식이 확산되면 직접 민주주의에 보다 가까워지지 않겠냐고 보는 것이다. 손제용 릿교대학 법학과 교수는 “일본 사회에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이 팽배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정치 변화의 수요가 크다는 얘기도 된다”며 “폴리폴리가 야심차게 그 지점을 짚었고, 규제가 매우 엄격한 정치자금 분야에서 블록체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가치(토큰)를 만들고 직접 후원을 할 수 있게 한 부분은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유아사 하루미치 정보보안대학원 교수는 “블록체인 정치 코드의 핵심은 직접 민주주의”라며 “진통은 있겠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장기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로 변해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ㆍ요코하마=글ㆍ사진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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