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대학’인데, 뜯어보면 여느 대학과는 거리가 멀다. 심신을 조여왔던 입시에서 벗어나 뭔가를 자유롭게 시도해보고 그러면서 실패도 해보고, 그러는 중간중간 잠깐의 여유와 낭만을 즐겨볼 수도 있는 곳. 더불어 각종 학술적 탐문과 결과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성의 전당’ 정도로는 불려야 대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기준에서 영 아닌 곳이 있다. 대학은 분명 대학인데 대학 같지 않은 대학, 경찰대 얘기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경찰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1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권력기관 개혁안을 언급하면서 “경찰대를 개혁해 특정그룹이 권한을 독점하지 않도록 조정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부터다. 조 수석이 콕 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경찰대 개혁=폐지’가 아니겠냐는 해석이 난무하면서 “경찰대에 이제 메스가 가해질 것”이다는 관측이 춤을 췄다.
경찰대는 1981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37년이 지나는 동안 3,940명의 졸업생이 학비와 군역(軍役) 면제에 매달 교육수당까지 받아갔다. 졸업하면 국가공무원 6급에 해당하는 경위로 임용되는 등 혜택은 파격적이었다. 전국 수재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하나 둘씩 경찰 조직 내에 자리를 잡아갔다. “보고서에 틀린 맞춤법 교정하느라 하루가 다 가더라”거나 “영어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이들 천지”라는 이미지를 지금 경찰이 벗어날 수 있었던 게 다 자신들 덕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논란은 때마다 일었지만, 경찰대 폐지 주장은 안 된다는 반발에 번번이 힘을 쓰지 못했다. 총경 583명 중 320명, 경무관 76명 중 46명이 경찰대 출신(8월 1일 기준)이라는 수치도, ‘고위직 독점은 결국 동문끼리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폐교하면 경찰 조직 역량이 하향 평준화된다”는 반박에 맥을 못 췄다. 최근 5년간 재학생 104명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옮겨갔다며 세금으로 지나친 특혜를 준다는 지적이 새롭게 등장했지만 힘을 못쓰긴 매 한가지였다.
물론 그들이 엘리트 자원이라는 건 분명 ‘팩트’다. 22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던 때만큼은 아니라도, ‘경대 고시(考試)’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험생에게 인기는 여전하다. 숙원이었던 수사권 조정의 결실도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가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쯤에서 물어봄 직한 질문이 있다. 수학능력시험 점수를 높게 받은 학생이 4년간 책상머리에서 배운 지식으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을 지휘하면서 변수투성인 실제 사건을 얼마나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혹은 헤쳐 나갔었는지 하는 의문 말이다. 정말 경찰대 출신 덕에 경찰이 만족할 만한 역량을 지닌 조직이 됐는지, 경찰대를 나와 청장이나 고위직에 올랐던 이들은 ‘역시 경찰대 출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그렇다”고 자신하지 못한다면, 역시나 경찰대 폐지로 조직이 곧 하향 평준화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근 ‘경찰대학 개혁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학비 지원과 군 면제가 사라지게 될 것이며 편입생을 정원의 절반까지 받아들인다는 전망이 나온다. 해묵은 경찰대 폐지 논란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 같다는 반가움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경찰대 출신은 여전히 ○○기 졸업생으로 배출될 것이고, 그 선배들은 계속해 경찰 내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을 텐데, 과연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경찰대라는 간판이 가진 힘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고 싶다. 말도 많고 탈만 많았던 수사권 조정을 하는 정부라면 십수년 간 손대지 못한 기득권의 벽을 무너뜨리는 일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다. 그냥 간판 내리면 안 될까? 그에 대한 논의가 개혁위에서 한 번 진지하게 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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