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이베리아 반도의 남서쪽.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경지대에 인구 1만2,000명의 소도시 올리벤사(스페인 Olivenzaㆍ포르투갈 Olivença)가 있다. 전형적인 관광도시지만 비교적 사이 좋은 이웃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몇 안 되는 외교갈등 대상 중 하나다. 국제적으로도 스페인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받고, 이 도시 대부분 주민도 스스로를 스페인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포르투갈은 ‘200년전 빼앗긴 땅’이라는 공식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의 실효지배 상태지만 최근 800년 이래 역사로만 따지면 이 땅의 주인은 포르투갈인 적이 더 많다. 기록에 따르면 1297년 이후 1800년까지 줄곧 포르투갈이 통치했다. 그랬던 올리벤사가 스페인 영토로 편입된 건 19세기 유럽역사를 뒤흔들었던 나폴레옹 때문이다.
1800년 전후 포르투갈은 영국과 함께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맞서고 있었다. 스페인 지배에 놓였다가 다시 독립(1668년 리스본 조약)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걸 계기로 영국은 오랜 기간 포르투갈의 우방이었다. 대륙봉쇄령으로 영국을 압박하던 나폴레옹은 1801년 포르투갈에게 영국과의 동맹파기를 요구했다. 또 포르투갈이 거부하자 스페인과 함께 침공했다. 그 해 5월 침공을 개시한 스페인 군대가 최초로 손쉽게 함락시킨 곳이 올리벤사였다. 훗날 ‘오렌지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전쟁의 결과는 포르투갈이 ‘바다호스’(Badajoz) 조약(1801년 9월)에 서명하면서 인정되는 듯 했다.
그러나 영토분쟁의 단초는 그 이후 만들어졌다. 1805년 트라팔가 해전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패전국 포르투갈을 옭아매던 바다호스 조약의 효력이 유명무실해졌다. 대신 나폴레옹 이후의 유럽질서를 새롭게 모색한 오스트리아 빈 회의(1815년)에서 스페인은 “올리벤사를 포르투갈로 반환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조항에 서명했다. 조약에 서명한 뒤에도 스페인은 “노력한다는 의미이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건 아니였다”며 반환을 미뤘고, 스페인을 강제할 힘이 없는 포르투갈은 200년 넘게 ‘반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처럼 외교적으로는 팽팽하지만, 스페인ㆍ포르투갈의 적극성은 다른 나라들의 영토분쟁과는 많이 다르다. 영유권을 주장하면서도 포르투갈은 자신들이 만드는 지도에서 조차도 이 땅을 포르투갈 영토로 그리지 않는다. 스페인도 ‘로우 키’ 전술이다. 주민 대다수가 스페인 잔류를 희망하지만, 그런 사실을 대외적으로 굳이 강조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영토분쟁인 영국과의 ‘지브롤터’ 분쟁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올리벤사 경우와는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지브롤터’ 분쟁에서 영국은 “주민 대부분이 영국령으로 남아 있는 걸 희망한다”며 스페인의 반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올리벤사 문제는 포르투갈ㆍ스페인 사이의 심각한 현안이 된 적이 없고, 국제사회에서 조용하게 진행 중인 영토분쟁의 대표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왕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