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소액연체자 대상 76만명 중
재단 출범 후 10만6000명 상담
심사 통과는 겨우 1만2000명
금융회사 출연금 442억원 불과
총 채무 2조6000억에 턱없어
재단도 지원안내ㆍ상담 등 소극적
# 15년 전 사업에 실패해 5,000여만원의 빚을 진 A씨는 4년 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를 조정 받은 뒤 매달 6만4,000원씩 꼬박꼬박 빚을 갚아왔다. 이제 남은 빚은 600여만원. A씨는 10년 넘게 1,000만원 이하의 원금을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에 대해 상환능력 심사 후 채무 정리 등을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에 이를 문의했다. 그러나 A씨는 상담원에게서 “상환 능력이 있는 경우엔 접수가 되지 않는다”는 안내만 받았다. 알고 보니 상담원이 잘못 안내한 것이었다. A씨는 지원 대상이었다.
# 금융권에 1,390만원의 빚이 남아 있는 B씨도 최근 재단에 빚 청산 여부를 문의했지만 거절당했다. 직원은 채무가 1,000만원이 넘으면 신청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B씨의 경우 총 채무는 1,390만원이지만 실제론 700만원과 690만원 등 2개의 채무로 나뉘어져 있어 이 중 1개는 채무를 면제받을 수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랜 기간 빚에 시달린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해 출범한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채무 면제가 절실한 이들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재원부족과 상담사의 전문성 결여, 금융권의 비협조 등의 이유로 장기소액연체자재기지원 사업이 헛돌고 있다.
1일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의 고객지원센터에 채무면제 등을 문의한 상담자 수는 재단이 출범한 2월 말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총 10만6,888명을 기록했다. 정부가 추산하는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상이 76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7명 중 1명은 재단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셈이다. 그러나 이중 실제로 접수가 된 것은 3만1,000명(7월9일 기준)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이후 심사를 통과해 채무를 면제 받은 사람은 1만2,000명에 그쳤다. 재단을 통해 지원 받은 이가 전체 장기소액연체자의 1.5% 수준이란 이야기다.
사업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빚을 탕감해주는 국민행복기금과 달리 장기소액연체자재기지원사업은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출연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행복기금으로 빚을 탕감 받을 수 없는 장기소액연체자 76만명의 채무는 총 2조6,000억원이다. 이들 채권을 액면가의 10%에 매입한다고 해도 2,000억원이 넘는 재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재단이 금융회사들로부터 확보한 출연금은 442억원에 불과하다. 재단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출연금이 늘어나는 대로 채권을 매입해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작 돈줄을 쥔 금융회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채권을 헐값에 넘기는 것도 공익적인 차원에서 하는 것인데 출연금까지 내라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액수를 두고 (재단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협회 관계자도 “정부가 세금으로 빚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융회사의 팔을 비틀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재단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할 수 밖에 없다. 전화 상담이 대부분인데도 콜센터를 외주 업체에 맡기고, 관련 교육도 1회에 그치는 등 관리가 부실한 상태다. 이 때문에 A씨나 B씨처럼 원래 지원대상인데도 콜센터 직원의 잘못된 안내로 접수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없잖다. 제윤경 의원은 “콜센터 업무 담당자에 대한 교육이 미흡하고 홍보도 덜 돼 신청자가 저조하다”며 “재단은 장기소액연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알려줘야 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 당국인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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