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참파삭주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 사고로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 이번에는 불발탄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댐에서 쏟아진 물에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투하한 불발탄이 토사와 함께 마을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을 지원하면서 미국의 공격을 받았다.
호주 ABC뉴스는 31일 라오스 적십자사가 피해 지역에 불발탄과 지뢰 폭발 위험이 더 커졌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라오스 불발탄 전문가 제리 레드펀은 “이번 홍수가 땅속 깊숙한 곳에 있던 불발탄을 노출 시켰을 수 있다”며 “마을에 물이 빠지면서 주민들이 진흙으로 덮인 거주지로 돌아가고 있지만, 불발탄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은 북베트남이 라오스를 경유한 이른바 ‘호찌민 루트’를 통해 남쪽 격전지로 병력과 물자를 보급하자 이를 차단할 목적으로 1964~1973년 라오스에 대량의 폭탄을 투하했다. 200만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9년 동안 매 8분마다 포탄이 떨어진 것에 비유된다. 라오스 사람들은 이 중 30% 가량을 불발탄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수해가 집중된 아타푸도 포탄 투하가 집중됐던 지역 가운데 하나다. 물이 빠진 뒤 높이 10m에 달하는 진흙에 뒤덮인 가옥이 발견될 정도로 거센 물살이 진흙과 토사를 파헤치고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불발탄을 휩쓸려 옮겨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라오스에서 커피를 생산하고 있는 교민 이종덕(53)씨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들은 묻혀 있다가도 큰 비가 오고 나면 밖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다”며 “농사 짓다 발목이 날아가고 사람이 죽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또 “탄피로 집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을 정도로 불발탄 문제는 라오스 사람들 가까이에 있다”며 자신의 커피 농장 안에서도 불발탄이 발견돼 폭파시키는 방법으로 해체한 사실을 소개했다.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평화로운 모습 때문에 한국인 등 많은 관광객들이 라오스를 찾는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곳곳에 불발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한 현지인은 “라오스에서 길이 아닌 땅을 밟는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해자인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라오스의 불발탄 제거 사업을 펼치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국인 한국의 경우 무상원조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2015년부터 라오스 불발탄제거청(NRA), 유엔개발계획(UNDP)과 협력해 불발탄 제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팍세(라오스)=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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