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ㆍ태평양에 1,200억원 “착수금”
폼페이오 장관, 1일부터 동남아 순방
중국 영향력 확대에 뒤늦게 동남아 잡기 시동
NYT “중국 투자 규모에 비해 초라” 지적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1억1,300만달러(1,26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동남아 잡기에 나섰다. 미국이 지난해 선보인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경제분야에서 구체화한 것으로 남중국해 일대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다분하다. 중국과 무역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중국 앞마당에서 대(對) 중국 포위 전선 구축을 강화하고 나선 것이지만,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인도ㆍ태평양 경제포럼’에 참석해 관련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투자는 인도ㆍ태평양 지역 평화와 번영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헌신에 있어 새로운 시대를 맞는 착수금”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이 거론한 투자 분야는 디지털 경제, 에너지, 기간시설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투자하는 분야와 맞물린다. 폼페이오 장관은 디지털 경제에 2,500만달러, 에너지 자원 개발 등에 5,000만달러, 기간시설 구축에 3,000만달러 등을 제시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인도ㆍ태평양 거래 자문 펀드’ 설립 계획도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인도ㆍ태평양에서 지배를 추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인도ㆍ태평양 지역을 지배하려는 어떤 국가에도 반대한다”고 밝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발언을 내놓았다.
미국이 특히 주력하는 지역은 동남아시아다. 7월초 베트남 방문에 나섰던 폼페이오 장관은 8월1일부터 5일까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는 등 아세안(ASEAN) 국가들과 다양한 장관급 회담을 갖는다. 국무부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에 대한 헌신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혀 북한이 외화벌이의 뒷마당으로 활용해온 동남아 지역에서 대북 제재의 구멍을 차단하는 데도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아울러 “이번 주 후반에 안보 지원에 대한 발표도 할 것이다”고 밝혀 동남아 일대에서 경제와 안보 분야에 걸쳐 미중간 주도권 경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동남아 접근은 뒤늦은 측면이 다분하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아시아ㆍ태평양이란 용어를 ‘인도ㆍ태평양’으로 바꾸며 동북아ㆍ동남아ㆍ호주ㆍ인도로 이어지는 지역에서 경제ㆍ안보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드러내긴 했지만, 체계적인 실행 계획은 거의 내놓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통상 압박을 강화하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영향력이 더욱 확대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TPP를 탈퇴한 트럼프 대통령 결정에 비춰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며 동남아 국가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발표한 투자 규모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기반시설 투자만 해도 중국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약속한 3,000만 달러는 초라하다”며 “이는 중국에 맞서는 일관된 전략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중국이 파키스탄에만 62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을 거론하면서 폼페이오 장관이 밝힌 착수금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제프 스미스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은 FT에 “폼페이오 장관의 연설은 긍정적이지만 좀 더 강력한 것이 있어야 한다”며 “상대국들은 미국 정부의 의도가 좀 더 명확하기를 원할 것이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호치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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