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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칼럼] 발상 전환 요구되는 저출산 대책

입력
2018.07.3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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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지원 통한 출산율 제고 정책 한계 

 비혼ㆍ저출산 배경은 불합리한 여성차별 

 여성 자아실현 가능한 사회환경 이뤄야 

학부에서 전공 수업을 할 때 적어도 한 주는 결혼과 출산 문제를 다룬다. 여기엔 해당 사안에 대한 필자의 깊은 관심이 투사돼 있다. 필자는 한국에서 여성의 교육 수준이 결혼, 출산과 경제 활동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박사 논문을 썼다. 이 같은 학문적 편력 때문에 지금껏 결혼과 출산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낸다.

결혼이나 출산과 관련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상황이 점점 나빠지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결혼 의향을 가진 학생의 비율은 갈수록 눈에 띄게 감소하고 결혼은 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생각이 별로 없는 경우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다만 결혼이나 출산에 왜 소극적인지 물었을 때 귀에 쏙 들어오는 답변을 들려준 학생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마침내 한 여학생이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한 마디를 날렸다.

“어떻게 번 돈인데 남편이나 자식과 나눠 씁니까?”

그 학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음에도 내 가슴엔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꽂혔다. 폐부를 찌르는 그 한 마디를 통해 젊은 여성들의 비혼 및 저출산과 관련된 의문점이 대부분 해소됐다. 진솔하게 속내를 드러내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의 기회를 준 그 학생이 너무 고마웠다. 다른 한편으론 현실적 대안에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아, 어떻게든 저 분노와 열망을 달래고 보듬어야 할 텐데 과연 마땅한 방도는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절감하지만 요즘 신세대 여성들은 똑똑하고 자아실현 욕구가 아주 강하다. 국가가 주관하는 각종 시험에서 거센 여풍이 부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어려서부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존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철저히 사회화하고 준비해 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부당한 차별에 대해선 무섭게 분노하고 자신의 경력은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는 결기나 의지가 강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취업은 무척 어렵다. 괜찮은 일자리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남성 선호 관행 때문에 은밀한 차별과 배제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결혼을 하게 되면 경력 단절의 위험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결혼을 할 경우 남성은 배려 대상이 되지만 여성은 배제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이다. 독박 육아도 경력 단절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최근 통계청은 혼인 건수와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5월 출생아 수가 2만7900명으로 3만명을 밑돌았는데, 이는 월별 출생아 수 통계 집계가 시작된 1981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그간 정부는 저출산 해소를 위해 2006년부터 126조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저출산 현상은 날로 심화했고 급기야 월별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제 저출산 대책에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재정을 투입해 경제적 지원을 늘리면 당연히 출산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비혼주의와 저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집단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일과 경력에 대한 고민이 크고 불합리한 차별을 용납하지 못하는 젊은 고학력 여성들이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에 매우 소극적인 이 여성들의 분노를 달래고 자아실현의 열망을 담아낼 수 있는 여성 친화적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데 배전의 관심과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점점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지금의 2030 여성은 엄마 세대가 다른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희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다.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며 또래 남성들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며 실력을 쌓은 이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을 넋 나간 짓으로 여기지 않도록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초저출산 현상도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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