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진행되는 짐바브웨 대선이 더욱 혼전으로 치닫고 있다. 지구상 최장기 독재자였던 로버트 무가베 전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를 통해 자신을 권좌에서 축출한 에머슨 음난가그와 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비판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무가베 전 대통령은 대선 전날인 29일 오랜 침묵을 깨고 연 기자회견에서 “나는 불법적으로 권력을 쥔 이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대선 경쟁에서 선두에 선 음난가그와 대통령을 가리켜 “나를 괴롭힌 자에게 투표할 수 없다”라고 했으며 집권당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에도 투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무가베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임에 “사악하고 악의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음난가그와 대통령을 향해 “그를 내 곁에 둔 것이 어리석은 짓이었다”라고 말했다.
무가베 전 대통령은 급기야 야권의 선두 후보인 넬슨 차미사 민주변혁운동(MDC) 대표를 가리켜 “선거 유세를 잘 하고 있다. 승리하게 되면 만나고 싶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오랜 정치적 집권 기반이었던 ZANU-PF에 배반을 당해 뒷전으로 밀려난 무가베 전 대통령이 다시 ZANU-PF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들이댄 꼴이 된 것이다.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급히 대응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서 그는 “차미사가 무가베와 협약을 맺었다” “(차미사의) 의도가 짐바브웨를 개혁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데 있다고 믿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차미사 대표에게 투표를 하는 것은 구제도에 대한 승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반면 차미사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무가베 전 대통령의 투표를 개의치 않는다며 “무가베는 시민이다. 투표자로서 뭐라 하든 상관 없다. 투표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음난가그와 대통령이 내놓은 ‘밀약설’은 부인했다. “내 내각에 (무가베 전 대통령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의 자리는 없다”라며 “ZANU-PF가 무가베 일가와의 내부 문제를 내게 돌리려는 발악”이라고 했다.
무가베 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의 집권을 보장한 것은 군부가 아니었다”라고 주장해 자신의 집권은 독재가 아니었다고 강조하려 했다. 또 자신이 물러난 것은 오로지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를 지키기 위해서였다며 “내 부인을 내버려 둬라”라고 말했다. 무가베 전 대통령은 그레이스를 차기 대권 후보로 올리려다 지난해 11월 음난가그와 현 대통령과 군부의 반발로 쿠데타에 직면해 권력을 내려놓았다.
짐바브웨는 30일 무가베 전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 38년만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적 선거를 치르게 됐지만 여전히 의심은 남아 있다. 차미사 대표와 MDC는 짐바브웨 선거관리위원회(ZEC)가 편향된 선거 운영을 할 것이라며 투표는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ZEC는 자신들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다만 국제사회는 그간 음난가그와 대통령의 통치에 비추어 볼 때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지는 않더라도 무가베 집권 시절 수준의 선거 결과 조작이나 투표 강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짐바브웨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한 후보가 50%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9월 2차 대선을 치른다. 아프로바로미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음난가그와 대통령은 40%의 지지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차미사 대표도 37%를 얻었으며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거나 응답하지 않은 유권자도 20%였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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