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을 위한 포석 아닌가요?”
지금은 명물로 자리잡은 ‘서울로 7017’ 개장을 앞둔 지난 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련한 언론사 부장단 간담회에서 이런 내용의 질문이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복원과 버스 전용차로 등 굵직한 사업을 벌여 깊은 인상을 남긴 뒤 대권을 거머쥔 것에 빗댄 질문이었다.
당시 박 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은 3,800억원대 사업이지만 서울로 사업 예산은 6분의 1수준인 500억원대”라며 “만일 청계천처럼 보여주기 식 사업을 펼치려 했다면 다른 것으로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시민단체 출신인 만큼 거창한 프로젝트보다는 작지만 시민들의 삶에 스며들 수 있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실제로 문화비축기지, 한강함상공원, 다시세운프로젝트(세운상가), 60년 만에 개방된 덕수궁 돌담길 등 이른바 ‘잘생겼다 서울 20’이라는 이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거창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박원순식 행정의 산물이다. 박근혜 정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과감히 밀어붙인 청년수당을 비롯한 복지 행정 역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주민의 삶을 질을 우선한 미시행정의 결정판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서울시 출신 인사가 대거 청와대로 발탁된 것은 그가 펼친 행정이 제대로 평가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민선 3기에 접어든 박 시장의 행보는 예전과 궤를 달리하는 것 같다. 싱가포르에서 불쑥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하고 신도시에 버금가게 만들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내놓겠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용산역부터 서울역까지 철도 구간을 지하화하고 그 위에 상업 시설을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언급했다.
가뜩이나 언제 튈 지 모르는 부동산 시장에 박 시장의 발언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이내 해당 지역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나서 “국토부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박 시장도 이에 질세라 “여의도 도시 계획은 전적으로 서울시장의 권한”이라고 맞서고 있다.
일련의 사태 본질은 도시계획의 주도권을 가리자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발언의 시점을 지적하고 싶다. 극도로 예민한 부동산 시장을 정부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억누르고 있는 마당에 박 시장이 정부와 사전 논의 없이 이런 발언을 꺼낼 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는지 말이다. 더욱이 여의도를 통째로 개발한다는 것은 과거 역대 서울시장이 추진해온 어떤 사업보다 임팩트가 큰,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모자랄 거대 프로젝트다.
박 시장 본인의 말마따나 여의도 개발구상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던 것”이라면 더더욱 관련 기관과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발표했어야 했다.
박 시장은 지난 대선 당시 당내경선에서 중도 포기, 대권 레이스에서 물러섰다. 유권자들은 이제 더 이상 박원순을 참신한 정치인 범주에 넣고 있지 않다는 말을 남겼다.
3선 성공과 더불어 안희정, 이재명 등 유력한 라이벌 주자들이 각종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절호의 여건이 형성됐다. 급변한 상황 변화에 미시 행정에 집중하던 박 시장이 3기 임기에서 대형 프로젝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대권을 향한 시동을 위해 지금까지 보여온 미시 행정보다는 거대 프로젝트 개발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이번 행보는 어쩐지 어색하다. 오히려 너무 조바심을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 정도다. 그토록 질색하던 이명박식 보여주기 행정을 스스로 답습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박 시장은 지난 대선 경선 레이스 포기 후 “나 스스로 너무 준비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준비부족이 보여주기식 행정을 펼치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을 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재임할 수 있었던 것은 박원순식 미시 행정의 재신임에 다름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기존 자신의 색깔에 어떤 색을 더 입혀야 할 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
한창만 지역사회부장 cmha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