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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진보 교조주의’ 덫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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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학 칼럼] ‘진보 교조주의’ 덫에서 벗어나라

입력
2018.07.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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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ㆍ진보 아울렀던 참여정부

공정ㆍ분배 치우친 J노믹스 1년

국민 삶 우선 실용주의로 가야

노무현은 성장과 분배, 개혁과 개방,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추구한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의 실용주의는 좌우협공 속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J노믹스를 둘러싼 갈등도 참여정부 판박이다. 복지와 분배 강화를 무조건 ‘좌파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는 보수야 그렇다 치자. 진보적 정책수단만 선(善)이요 정의라고 믿는 진보 맹신주의자도 문제다. 사진은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전원회의 모습. 소상공인 대표들이 ‘업종별 차등 적용’ 손팻말을 들고 있는 반면,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위원은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다짐하는 문구를 붙였다. 연합뉴스
노무현은 성장과 분배, 개혁과 개방,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추구한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의 실용주의는 좌우협공 속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J노믹스를 둘러싼 갈등도 참여정부 판박이다. 복지와 분배 강화를 무조건 ‘좌파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는 보수야 그렇다 치자. 진보적 정책수단만 선(善)이요 정의라고 믿는 진보 맹신주의자도 문제다. 사진은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전원회의 모습. 소상공인 대표들이 ‘업종별 차등 적용’ 손팻말을 들고 있는 반면,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위원은 ‘최저임금 1만원 쟁취’를 다짐하는 문구를 붙였다. 연합뉴스

같은 진보정권이라 해도, 참여정부의 경제철학은 국민의 정부와 많이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벤처 육성, 신용카드 확대, 건설경기 부양을 적극 추진했다. 성장과 효율을 중시한 보수 경제정책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을 지배해 온 성장만능주의에 메스를 댔다. 사실상 ‘성장과 분배’,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 ‘개혁과 개방’을 동시에 추구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은 복지를 강화하고 동반성장 전략을 추진했다.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강력한 세제 정책을 폈다. 동시에 임금 격차를 키우는 노동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깨뜨리고 세계 각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금융시장을 개방해 금융허브를 만들려고 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른 실용주의였다. 성과는 적었다. 성장률은 떨어졌고 양극화는 심화했다. 조급함이 빚은 시행착오 탓도 있었으나 최악의 경제 여건을 물려받은 영향도 컸다.

무엇보다 좌우 양쪽의 지지를 모두 잃은 게 결정적이었다. 보수는 분배ㆍ균형 정책이라면 경기 들린 듯 저항했다. 보수언론은 5년 내내 ‘경제파탄’ ‘경제실정’ 등의 극단적 표현을 써 가며 노무현을 공격했다.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는 악의적 별명으로 경제 성과를 조롱했다. 진보는 한미 FTA, 금융허브 등 성장ㆍ개방 정책에는 무조건 반기를 들었다.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한다’고 비아냥댔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계승자다. 인적 구성도 경제철학도 비슷하다. J노믹스의 3대 정책기조는 소득주도ㆍ공정ㆍ혁신. 드센 지지층의 반발에 좌절했던 노무현 트라우마 탓일까. J노믹스 1년은 공정ㆍ분배에 치중했으나 서민 삶은 나아진 게 없다. 가계소득을 늘려 주는 정책은 불평등 완화와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된다. 자본 권력이 중소 협력업체와 노동자를 착취하지 않도록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공정경제 자체로 성장이 이뤄지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 또한 단기 소비확대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 성장동력 확충과는 무관하다. 수출 제조업 중심의 한국경제는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한계에 직면했다. 늘어나야 허드레 일자리뿐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친 보수정권 9년 동안에도 나쁜 일자리만 늘었다.

어떻게 좋은 일자리를 늘릴 텐가. 공정한 시장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비제조업 분야의 혁신성장이 중요하다. 유통ㆍIT서비스 기업인 아마존 구글 등의 설비투자 규모는 제조업의 2배 이상이다. 중국 인도는 디지털과 융합된 서비스업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국은 ITㆍ의료 선진국이다. 핀테크 바이오 원격진료 자율주행차 등 신산업에서 혁신을 통한 고용 창출이 절실하다.

J노믹스를 둘러싼 갈등은 참여정부 판박이다. 공정한 시장을 만들려는 정책에는 보수가 저항하고 혁신성장과 규제 완화에는 진보층 반발이 거세다. 국가 재정을 늘리면 무조건 ‘좌파 포퓰리즘’이라 공격하는 보수야 그렇다 치자. 흑백논리에 빠진 진보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편협성이 더 문제다. 이들에게 국가 재정의 역할을 확대하는 진보정책은 선이요, 규제를 풀어 시장의 힘을 활용하려는 보수정책은 악이다. 그러니 핀테크 산업을 키우기 위한 은산(銀産)분리 규제 완화는 ‘대기업 편들기’요, 원격진료는 ‘의료민영화의 시작’이고, 디지털혁명의 꽃인 데이터 활용은 ‘개인정보 침해’일 뿐이다.

오랜 기간 쌓인 양극화 구조가 쉽게 바뀔 리 없다. 개혁 조급증을 버리고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단임 정부의 성패는 결국 민생에 달렸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국민 삶만 나아진다면, 정책수단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무슨 상관인가.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의 힘으로 탄생했다. 노무현의 실용주의를 믿고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진보적 정책수단만 옳다는 교조주의의 덫에 갇혀 있으면 그 바깥을 볼 수 없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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