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징후 포착 즉시 방류 안해
SK건설ㆍ서부발전 책임공방 지속
건설협회 등 구호성금ㆍ물품 속속
동남아 현지업체ㆍWSJ 등
라오스 무작위 댐 건설 비판
한국기업 책임론도 불거져
라오스 정부, 건설사에 비용 청구
라오스 아타푸주에서 건설 중이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댐 보조댐 사고 정황을 놓고 시공사인 SK건설과 댐 운영 주체인 한국서부발전의 설명이 달라 원인 규명 작업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SK건설은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보조댐의 ‘유실’이라는 입장인 반면 서부발전은 시설물 침하에 의한 ‘붕괴’라고 주장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향후 책임 소재를 가릴 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두 회사가 이미 기싸움을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댐 사업은 컨소시엄에서 26%의 지분을 가진 SK건설이 시공 및 건설을 담당하고, 25%의 지분을 가진 서부발전이 댐 운용과 정비를 담당하는 구조다. 이들 회사는 오는 11월 시운전, 내년 2월 상업운전을 시작해 향후 27년 동안 댐 운영을 통해 도출되는 발전(發電) 수익을 지분에 따라 나눠 가진 후 라오스정부에 댐에 대한 모든 권리를 무상 양도하기로 한 상태다.
논란은 24일(현지시간) 보조댐 이상으로 5억톤 가량의 물이 방류됐을 당시 상황을 놓고 SK건설은 ‘유실’, 서부발전은 ‘붕괴’라고 설명하며 시작됐다. 유실이란 시설물의 기능은 정상적이었지만 폭우로 인한 유량 증가로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유량 증가다. 사고 발생 당시 건설 공정률이 91.6%에 달하는 등 사실상 댐의 핵심 기능이 모두 갖춰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폭우 이후 유량이 급격히 증가할 당시 서부발전이 댐 수위만 잘 조절했으면 유실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는 SK건설 측의 논리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SK건설 관계자는 “문제가 된 5번째 보조댐은 최초 유실 이후 현재 거의 흔적이 남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결과적으로 지금은 보조댐이 붕괴된 셈이지만, 수량 조절 실패로 인한 유실이 핵심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상 서부발전도 이에 대한 구체적 해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부발전은 전날 국회에 제출한 ‘라오스 세남노이 보조댐 붕괴 경과 보고’를 통해 이번 사고의 원인을 유실이 아닌 붕괴라고 단정했다. 사건 발생 나흘 전인 20일 보조댐 중앙부에 11cm의 침하가 발생했고, 22일에는 상단부 10군데서 균열 침하가 이어져 23일에는 상단부 침하가 1m에 이르러 결국 24일 댐이 붕괴됐다는 게 서부발전 설명이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붕괴를 유발했다는 ‘침하’다. 침하는 자연재해로 인한 유실과 달리 시공 기술상 문제로 인한 구조물 이상이라는 쪽에 방점이 찍힌 용어다. 서부발전은 보고를 통해 “22일 복구장비를 수배했고, 23일 장비가 도착했으나 침하 조짐이 있어 대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들은 상황 변화에 따른 준비를 했으나 침하 문제는 시공상 오류라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뉘앙스가 짙게 깔린 대목이다.
‘수량 관리 실패로 인한 유실’과 ‘침하로 인한 붕괴’ 중 어떤 쪽이 진실일지 확인할 때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이번 사고의 발생 시점이 댐을 완공했을 때가 아니어서 시공사와 운영사 한 쪽에 완전히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인데다, 폭우로 인한 현장 혼란과 도로 붕괴로 댐 접근 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업계에선 유실 혹은 침수 징후를 양 사가 포착한 뒤 왜 6시간이 지나서야 SK건설이 비상 방류구를 가동했는지가 책임 소재 가리기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댐 건설 경험이 있는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고 전 라오스에선 일주일 강수량이 1,000mm에 달하는 등 예년보다 3배가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며 “라오스 댐도 PMF(최대 가능 홍수량)을 고려해 설계했을 텐데, 유량 증가가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서부발전이 왜 빨리 비상 방류를 하지 않았는지, 6시간이나 지난 뒤에 왜 시공사가 비상방류 결정을 내린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면 책임 소재의 윤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실과 붕괴 진실 공방은 향후 보험금 수령 여부와도 직결돼 있다. 양 사가 공동 참여한 라오스 댐 공동발주처(PNPC)는 공사 수행 전 6억8,000만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건설공사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라오스 댐 공사비가 7억1,600만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재시공 비용 및 공사지연에 따른 지체 보상금은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규모다.
SK건설의 주장처럼 자연재해에 따른 유실만이 직접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관련 피해보상 금액과 복구 관련 비용은 보험회사가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공과 관리 과정의 문제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나면 인적ㆍ물적 피해 배상 책임은 전적으로 사업자들이 떠안게 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PMPC가 현지에서 피해 주민 보상까지 가능한 제3자 책임보험을 추가로 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경우도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로 결론 난다면 보험금이 지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라오스 정부가 SK건설과 한국서부발전 등의 합작으로 구성된 세피안 세남노이 전력회사(PNPC)에 댐 붕괴로 인한 인근 지역 복구 비용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라오스의 영자 일간지 비엔티안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SK건설은 PNPC 지분 26%를, 서부발전은 25%를 갖고 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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