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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정규직… 함께 파업했던 동료들 생각 많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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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에 정규직… 함께 파업했던 동료들 생각 많이 나”

입력
2018.07.26 18:23
수정
2018.07.26 21: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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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월드컵점 박미자씨

2007년 홈에버 대량해고 사태 때

물대포 맞아가며 510일간 파업

영화 ‘카트’로 제작되며 알려져

장기근속 430명 정규직 전환

“대리까지 승진하고 싶어요”

홈플러스 근무 18년(까르푸, 홈에버 포함) 만에 정규직이 된 박미자씨가 26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월드컵점 계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홈플러스 근무 18년(까르푸, 홈에버 포함) 만에 정규직이 된 박미자씨가 26일 서울 마포구 홈플러스 월드컵점 계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죠. 제가 일하는 월드컵점에서만 48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모두 같은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입사한 지 십수년이 지나서야 꿈이 이뤄졌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 근무 중인 박미자(55)씨는 지난 1일 직장생활 18년 만에 ‘정규직’ 직원이 됐다. 이후 현장직무교육을 마친 뒤, 26일 처음 정규직으로 업무를 시작한 그는 근무 중 잠시 본보와 만나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회사 결정을 처음 들었을 땐 마치 꿈만 같아 동료 직원들 모두 믿지 못했다”며 “정규직이 되니 지난 18년의 일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말했다. 박씨의 직급은 더 이상 무기계약직을 의미하는 ‘담당’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막 입사한 직원에게 부여하는 ‘선임’이다.

이날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홈플러스스토어즈는 만 12년 이상 장기근속 무기계약직 사원 43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 완료했다고 밝혔다. 회사가 지난 2월 노동조합과 합의했던 정규직 전환 약속을 실천한 것이다. 노사는 2005년 12월 31일 이전 입사자 가운데 만 12년 이상 장기근속한 무기계약직 직원 중 희망자에 대해 올 7월부터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지난해 취임한 임일순 홈플러스스토어즈 사장이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부응해 대형마트 업계 최초로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

박 선임은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한 430여명 정규직 가운데 가장 오래 근속한 직원 가운데 한 명이다. 홈플러스의 전신인 까르푸 가양점으로 2000년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그는 종양 수술을 받은 외동아들의 병간호 때문에 사표를 쓰고 일을 쉬어야 했던 몇 달을 빼면 홈에버, 홈플러스까지 장장 18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월드컵점에서만 15년째다. 정규직이 된다는 소식에 가장 기뻐했던 것도 아들이었다. 그는 “아들이 ‘엄마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다’며 축하해줬다”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박 선임은 2007년 홈에버의 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 때 동료들과 510일간 파업을 이어갔던 일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2006년 까르푸를 인수한 뒤 홈에버로 명칭을 바꾼 이랜드그룹은 경영 상황이 악화하자 비정규직 직원을 대량 해고했다. 박 선임은 “회사가 비정규직을 해고하면서 전화나 문자메시지 한 통 보내지 않아, 노조를 통해 해고 사실을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2년 가까이 파업을 이어가며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경찰차 진입을 막으려 차 아래 눕기도 했고 경찰의 물대포를 맞기도 했다. 박 선임은 아들 치료비를 위해 낮에는 동료들과 함께 파업에 동참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그때 함께 고생했던 동료 중에는 도중에 그만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정규직이 되고 나니 그들이 많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당시 파업 과정은 영화 ‘카트’로 제작돼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박 선임은 “요즘도 가끔 ’카트’를 반복해 보는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2008년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500일이 넘는 파업은 끝이 났지만, 비정규직의 위태한 삶은 이어졌다. 회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몇 차례 떠돌았지만 결국 무산돼 직원들을 허탈하게 했고, 회사 소유주가 바뀔 때면 과거의 사태가 반복되진 않을까 가슴 졸여야 했다.

이번 정규직 전환 대상자 500여명 가운데 86%가량인 430여명이 정규직 전환을 신청했다. 일부 직원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정규직으로 바뀔 경우 근무 부서나 지역이 바뀔 수 있어 기존 무기계약직 잔류를 원했다고 한다.

정규직으로 발탁된 직원들은 기존 정규직 선임 직원들과 동일한 복리후생 혜택을 받는다. 승진 기회도 똑같이 주어진다. 박 선임은 “나도 정규직이 되어 과장까지 승진하고 싶었는데 정년이 많이 남지 않아 얼마나 승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최소한 선임, 주임을 넘어 대리까진 해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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