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코칸 MIT 교수ㆍ데보라 그린필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기자간담회
“긱 경제는 근로조건 후퇴시킬 것”
“(정보통신 기술 발전으로)언제 어디서나 일 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이는 바꿔 말하면 언제 어디서나 일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일과 가정의 경계가 모호해 진다는 것인데, 근로조건 후퇴로 볼 수 있어요.”(데보라 그린필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보기술(IT)ㆍ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비(非)표준 일자리의 증가로 기존 정규직 중심 노동조합의 영향력과 대표성은 시시각각 옅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과거의 교섭-파업 중심의 관성적 투쟁에 매몰되어 있으면 대다수의 근로조건은 지금보다 훨씬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 세계 노사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자칫 불평등과 사회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급격한 기술 발전의 혜택을 최대한 다수가 누리도록 하려면 노조부터 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토머스 코칸 MIT 교수와 데보라 그린필드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은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주최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노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노조의 역할 변화도 주문했다.
그린필드 사무차장은 현재의 기술 발전 양상이 근로자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세계 전반에 걸쳐 ▦남녀 근로자의 일자리ㆍ임금 격차 ▦선진국-개발도상국 격차 ▦극소수 부유층과 나머지 근로자의 격차 등이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커지고 있다면서 “노동이 과거보다 유연한 방식이 되면서 여성의 근로 참여 같은 이득도 가져다 주지만 직업 불안정성, 일과 가정의 경계 모호와 같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근로자가 근로조건에 대한 발언권을 가져야 기술 발전 과정에서 근로자의 소외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규직 근로자 대신 프리랜서 근로형태가 확산되는 ‘긱(Gig) 경제’의 등장 역시 근로 조건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했다. “시간제와 임시직 근로자, 위장 자영업자 등 특수고용근로자들은 사회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서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린다. 이들에 대한 사회 복지 강화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조합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린필드 사무차장은 “긱 경제 근로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유무형의 장소를 마련하고,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임금 체불을 해결해 주는 역할을 전통적인 노조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사관계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코칸 교수는 “디지털화와 ‘산업 4.0’(4차 산업혁명과 유사한 개념) 등으로 새롭게 등장한 기술로 인한 포용의 과실을 어떻게 모두가 누릴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한다”면서 포용적 동반 성장을 하기 위한 네 가지 제안을 내놨다. ▦기업과 노조, 교육기관이 협력해 근로자가 평생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새로운 기술을 직장에 도입하려 할 때 도입 초기 단계부터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며 ▦일부 실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대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근로자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코칸 교수는 최근 미국 라스베거스의 카지노 업계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을 바람직한 사례로 제시했다. 그는 “사측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기 전 노조에 사전 통지를 하고, 기술 도입시 노조에 의견을 제시할 발언권을 주며, 노사가 공동 출자해 기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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