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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5주년, 1953년 7월 27일 그때 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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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5주년, 1953년 7월 27일 그때 판문점

입력
2018.07.25 16:06
수정
2018.07.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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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한글본.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한글본.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3년 7월 27일 북한·중국·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문 영문본.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북한·중국·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문 영문본.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 앉은 이)과 북한측 수석대표인 남일(왼쪽 앉은 이) 대장이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왼쪽 앉은 이)과 북한측 수석대표인 남일(왼쪽 앉은 이) 대장이 휴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북한측 대표 남일 대장.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북한측 대표 남일 대장.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유엔군 수석대표 해리슨 중장.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유엔군 수석대표 해리슨 중장.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한국이 빠진 채 북한ㆍ중국ㆍ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문과 지도. 연합뉴스
1953년 7월 27일 한국이 빠진 채 북한ㆍ중국ㆍ미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문과 지도. 연합뉴스

27일은 정전협정 65주년이 되는 날이다. 65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는 북측의 남일 대장과 유엔군 측의 윌리엄 K. 해리슨 미국 육군 중장이 참석한 정전협정 조인식이 있었다. 협정서는 “1953년 7월 27일 10시에 한국 판문점에서 영문, 한국문 및 중국문으로써 작성한다”고 쓰여있고, “본 정전협정의 일체 규정은 1953년 7월 27일 22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돼있다. 그날 발효된 협정이 65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협정서에 참석자 서명 위에는 북측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원수 김일성’, 중국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펑더화이’, 유엔군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국 육군 대장 마크 W. 클라크’ 의 이름과 서명이 적혀있다. 한국은 없다. 당시 협정 체결에는 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했고, 유엔군에 포함된 한국은 협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정전협정의 정식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영문으로는 ‘Agreement between the Commander-in-Chief, United Nations Command, on the one hand, and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Korean People’s Army and the Commander of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on the other hand, concerning a military armistice in Korea’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연합뉴스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연합뉴스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중국측 펑더화이. 연합뉴스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중국측 펑더화이. 연합뉴스
1953년 7월 판문점 유엔군 베이스캠프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마크 W. 클라크(가운데) 유엔군 총사령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3년 7월 판문점 유엔군 베이스캠프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는 마크 W. 클라크(가운데) 유엔군 총사령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긋는 군사정전위. 한국일보 자료사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긋는 군사정전위.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진은 정전협정 체결 이전인 1951년 10월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회담에서 유엔군의 머리대령(오른쪽)과 북한 인민군의 장춘산 대령이 비무장지대의 남북군사분계선이 그려진 지도들에 대해 가조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은 정전협정 체결 이전인 1951년 10월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회담에서 유엔군의 머리대령(오른쪽)과 북한 인민군의 장춘산 대령이 비무장지대의 남북군사분계선이 그려진 지도들에 대해 가조인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정전협정 애초 협정 체결이 이뤄지기 2년 전인 1951년부터 논의됐다. 당시 국제연합군 측과 북한 측은 비밀 접촉을 하여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첫 정전 회담을 열었다. 이후 1952년 7월 개성에서 본회담이 시작됐으나 전쟁 포로 문제 등으로 회담이 중지되는 등 지연되다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최종 서명함으로써 협정이 체결되어 6ㆍ25전쟁은 정지됐다. 그리고 한국과 북한은 전쟁의 완전한 종식인 종전(終戰)이 아닌 일시적으로 전투가 중단된 정전(停戰) 상태로 65년을 이어오고 있다.

김주성 기자 poem@hankookilbo.com

초기 정전회담이 있은 1951년 7월 개성 내봉장에서 북한 측 대표인 남일 대장(뒤에 걸어오는 사람)이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초기 정전회담이 있은 1951년 7월 개성 내봉장에서 북한 측 대표인 남일 대장(뒤에 걸어오는 사람)이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초기 정전회담이 열린 1951년 7월 개성 내봉장 전경.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담 추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초기 정전회담이 열린 1951년 7월 개성 내봉장 전경.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병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담 추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953년 6월 23일 미군이 촬영한 사진으로 저녁 늦게까지 불이 켜진 당시 정전 회담장의 모습. 연합뉴스
1953년 6월 23일 미군이 촬영한 사진으로 저녁 늦게까지 불이 켜진 당시 정전 회담장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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