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들 득세에 민주주의가 흔들린다
무소불위 권력… 포퓰리즘도 확산
“89개국에서 민주주의 퇴보” 분석
트럼프 “가짜뉴스” 매도 일삼는 등
언론 자유 지수도 13년 최저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스트롱맨’과 반(反)난민 기치를 내건 대중인기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의 득세로,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전세계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수십년의 승리를 구가했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크게 성장해 온 민주주의가 2007~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부터 후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국제 정치ㆍ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에 따르면 지난해 27개국에서 민주주의가 개선된 데 반해 무려 89개국에서 민주주의가 퇴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 비영리기구 베르텔스만재단은 “최근 12년래 민주주의의 질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1인 체제가 굳건해진 터키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 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지난 1월 공개한 ‘2018 세계자유보고서’에서 “언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자, 시위대, 정당, 사법부, 선거제도에 대한 일련의 공격들로 터키의 자유 지수는 2014년 이후 하락해 왔다”며 “2016년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6만명을 체포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등 무분별한 ‘마녀사냥’을 저질러 왔다”고 언급했다.
동유럽인 헝가리와 폴란드에서는 난민 위기를 기회 삼아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포퓰리스트들에 의해 민주주의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보고서는 “헝가리는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에 대한 위협으로 자유 지수가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폴란드는 집권당이 사법부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며 난민을 돕는 시민단체들을 지원해 온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은 지난 5월 극우 성향 포퓰리스트인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탄압을 버티지 못하고 본부를 부다페스트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옮긴 바 있다.
언론의 자유 역시 크게 위축됐다. 이코노미스트는 23일(현지시간) “전세계 평균 언론 자유 지수는 13년 래 최저치를 보이고 있으며, 취재 중 체포된 기자도 1990년대 이후 가장 많다”고 전했다. 특히 포퓰리스트들의 등장은 언론의 자유에 큰 위협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매체를 ‘가짜뉴스’로 매도해 언론의 신뢰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지난해 5월 한 기자는 극우정당인 프랑스 국민전선 마린 르펜 대표에게 비리 스캔들에 대해 질문하다 그의 경호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후퇴는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보고서는 “독재 사회로 전환된다는 것은 정부가 체제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면서도 인터넷과 SNS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열을 적용하고 정부 통제력을 높인다는 뜻”이라며 “이는 더 많은 부패와 부조리, 국가 권한 남용에 대한 책임회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민주주의가 죽는 방식’이라는 책의 저자인 스티븐 레비스키 하버드대 교수는 “이제 민주주의는 군사 쿠데타에 의해서만 독재체제로 전환되는 게 아니다”라며 “대신 대중의 지지가 기반이 돼 자유에 대한 침해가 심화해 간다”고 말했다.
물론 비관적인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지난 4월 반정부 시위로 총리가 축출됐으며, 남아공에서는 지난 2월 비리 등으로 퇴진 압력을 받아온 독재자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전격 사임하기도 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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