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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직후 '광장' 발표... 8번이나 고쳐쓰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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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직후 '광장' 발표... 8번이나 고쳐쓰기도

입력
2018.07.24 00:08
수정
2018.07.24 00:0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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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서울예대 교수 재직

정년 후엔 은둔형 문인 생활

23일 오전 10시 46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끝에 향년 84세로 별세한 최인훈 서울예술대학 명예교수는 영원한 광장의 작가였다.

고인은 1934년 두만강변 국경 도시인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자수성가한 목재상 부부의 4남 2녀 중 맏이였다. 해방 후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고인의 가족은 함경남도 원산으로 이주했다. 원산고교 재학 중 고인은 1950년 12월 가족과 함께 월남했다.

고인은 목포고를 졸업하고 1952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분단 한국의 현실을 고민하다, 마지막 학기 등록을 포기했다. 1957년 육군에 입대해 6년간 통역 장교로 복무했다. 지난해 입학 65년 만에 서울대 법학과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고인은 1959년 군인 신분으로 문예지 자유문학에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투고하며 등단했다. 이듬해 월간지 새벽 11월호에 문제작 ‘광장’을 발표했다. 주인공 이명준은 분단 시대의 상징적 지식인으로, 남과 북에서 체제에 절망하고 사랑에 환멸을 겪는다. 포로로 제3국 인도 행을 택하고 배에 오르지만 바다에 몸을 던진다.

고인은 ‘광장’을 4∙19 혁명으로 자유와 진보의 공기가 흐르기 시작할 때 썼다. ‘광장’은 고인에게 ‘전후 최대의 작가’라는 이름을 안겼다. 고인은 ‘광장’을 여덟 번이나 고집스럽게 고쳐 썼다. ‘광장’은 1996년 통쇄 100쇄를 찍은, 한국현대소설사의 기록적 작품이다.

고인은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이후 은둔 문인으로 살았다. 소설 ‘회색인’ ‘서유기’ ‘화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등을 남겼다. 한국일보 희곡상, 박경리 문학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서울극평가그룹상 등을 받았고, 1999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원영희씨와 고전음악 평론가인 아들 윤구, 딸 윤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영결식은 25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강당에서 열린다. 장지는 경기 고양시 자하연 일산 공원묘원이다. (02)2072-2020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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