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故 정연수 선생의
딸 정봉섭 매듭장과 손녀 박선경씨
‘매듭장, 반세기를 잇다’ 전시회
3대에 걸쳐 매듭장 3명 배출
“매듭은 끈기와 인내력 필요
전통 기예 전수여건 조성되길”
20일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전시장. 노리개부터 매듭 목걸이까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매듭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운 빛깔을 띤 진귀한 형태의 작품들은 단연 압권이었다. 옥과 비취 등 귀금속이 달린 매듭작품은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실과 끈이 장인의 손끝을 거쳐 화사한 공예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국가 무형문화재 22호인 고 정연수(1904~1974) 1대 매듭장 지정 50주년 기념 전시회의 모습이다. 전시는 ‘매듭장, 반세기를 잇다’란 주제로 21일까지 열렸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을 반긴 고운 한복차림의 모녀는 전시회를 연 정봉섭(80) 매듭장과 그의 딸 박선경(54) 매듭장 전수교육조교였다. 정연수 선생의 딸과 손녀로 반세기 넘게 3대째 전통매듭의 가업을 잇고 있다.
이들이 기억하는 정연수 장인은 한평생 매듭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전통적으로 매듭장과 끈목장이 많이 살던 서울 중구 광희동에 태어나 매듭을 평생 업으로 삼았다. 이후 전통매듭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던 1968년 1대 매듭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부인 최은순(1917~2009) 선생도 한평생 매듭을 지으며 2대 매듭장으로 지정됐다. 이번 전시에선 정 선생 일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정봉섭 선생도 부모의 뒤를 이어 매듭인생 50년 만인 2006년 매듭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술 머리에 글자를 감는 기법과 색실을 감아 매듭을 엮는 기능을 복원, 원형보전에 기여한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 집안에서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3명이나 배출된 것이다. 전례 없는 진기록이다. 이는 가풍과도 같은 특유의 ‘인내와 끈기’가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정봉섭 매듭장은 손가락뼈 변형에 허리수술까지 받을 정도로 하루 10시간 이상 실을 꼬고 합치는 일을 수 십년간 매진했다. 그는 “부모로부터 장인으로서 갖춰야 끈기를 물려받은 게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 선생 곁은 맏딸 박선경 전수조교가 지킨다. 그 역시 30년 넘게 매듭 일을 하며 3대째 계보를 잇고 있다.
현실적 안타까움도 나타냈다. 정씨 모녀는 “몇 날, 몇 달씩 정성을 들여 만든 작품이 대중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는 서글프기도 했다”며 “무형문화재 기예가 제대로 전수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아쉬워했다.
전통매듭은 손 많이 가는 전통공예로 꼽힌다. 반복적인 수작업으로 ‘인내의 예술’이라고도 불린다. 곱게 물들인 명주실을 일일이 꼬고 합사(合絲)해 여러 행태의 모양으로 맺은 작업과정은 그만큼 고된 작업이다. 노리개 하나 만드는데 열흘 이상 걸릴 만큼 지독한 인내와 공력이 뒤따라야 한다.
당찬 계획도 전해왔다. 정씨 모녀는 “2년 뒤인 2020년에는 아버지 정연수 장인이 매듭을 시작한지 100년 되는 해”라며 “시절을 탓하지 않고 전통의 매듭기법으로 100년 가업의 맥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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