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당하기 일쑤에 붙잡아두려면 근거 필수
입증에도 장시간… 한국ㆍ독일 등 52개국 위반
‘선박 대 선박’ 흔하지만 3국 환적 사례 상당수
위성 포착 실패하면 관계자 증언 등 의존해야
중ㆍ러 탓에 ‘안보리 블랙리스트’ 등재 극소수
“북한산 석탄을 운반했다고 명확히 입증되기 전까지는 억류 근거가 없다.”
17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지난해 10월 중국계 업체 선박 2척(‘리치 글로리’호와 ‘스카이 에인절’호)이 러시아 홀름스크항에서 북한산 석탄을 싣고 한국에 입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북 제재 사각지대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2371호를 어긴 이 입항은 올 3월 안보리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거론됐다. 4개월 전이다. 하지만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두 선박은 한국에 입항했다. 금수 품목인 북한 석탄을 운반한 전력을 갖고 있는 선박이 우리 항구를 드나드는데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외교부와 관세청 등 당국은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늑장 조사로 북한에 뒷문을 열어준 꼴이 됐다’는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자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대북 제재 위반 여부) 조사 결과 합리적 근거가 나와야 억류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이번 북한산 석탄 반입 사태는 남ㆍ북ㆍ미 관계 개선 분위기와 상관없이 여전히 남아 있는 안보리 대북 제재를 둘러싸고 어떻게든 국제 제재망을 뚫어보려는 북한과 이를 막아내려는 유엔 회원국이 물밑에서 벌이는 공방전을 드러냈다. 날로 수법을 가다듬고 있는 북한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경우 감내해야 하는 빈축과 비난은 만만치 않다.
실제 고발되는 북한의 대북 제재망 돌파 시도는 끊임없다. 최근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를 위반한 정유제품 수입이 올해 상한선인 50만배럴을 넘겼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제출했다. 주로 제3국 선박들이 공해상의 ‘선박 대 선박’ 환적에 가담하는 경우지만 리치 글로리, 스카이 에인절처럼 제3국 항구를 환적에 활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9월 ‘중개상’ 19개국을 이용해 금수 품목 밀반출 또는 밀수에 성공했다. ISIS는 “이들 국가는 부지불식 간 중간 단계로 이용된다”며 “2014년 3월~2017년 1월 집계된 중간국가 규모(13개국)보다 크게 늘어난 모습”이라고 밝혔다. 한국 같은 대북 제재 위반 국가만 해도 영국, 대만, 인도, 독일 등 52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의 돌파에 뚫리지 않으려면 빈틈없는 정보력이 필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의 경우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과 국무부, 해안경비대가 ‘국제 운송 주의보’를 발표, 제재위반 선박의 위성 사진 등을 업계에 제공해 관여 시 추가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홍콩 선적인 ‘라이트하우스 윈모어’호를 우리 정부가 억류할 수 있었던 것도 동중국해 공해상 선박 간 정유 이적 장면을 포착한 미국 정찰위성 덕이었다. 하지만 관계자 증언 수집 등으로 이뤄지는 리치 글로리, 스카이 에인절 대상 조사는 사건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대북 제재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하려면 결국 외교전이 필수다. 제재 위반 선박에게 가해지는 가장 실효성 있는 조치는 유엔 안보리 블랙리스트(개별 제재 대상) 지정이다. 하지만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나서야 가능한 데다 북한을 비호하는 중국ㆍ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도 극복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중ㆍ러가 (제재 위반 행위에) 관계된 사안일 경우 이들이 절대 부인하지 못할 만한 강력한 증거가 있지 않는 한 블랙리스트 지정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면서도 “안보리 대북제재위 차원에서 (제재 이행을 위해) 협력하는 게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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