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경기 이천시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실험장. “쾅”하는 굉음와 함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시속 48.3㎞로 벽에 부딪쳤다. 차량 내 좌석에 앉아있던 마네킹(더미)들은 충격으로 몸이 고꾸라졌다. 특히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뒷좌석 마네킹의 피해가 컸다. 뒤쪽 왼편에 앉은 성인 마네킹(무게 78㎏)은 전방으로 튕기며 운전석을 수십㎝ 가량 밀어낸 뒤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어린이 마네킹(35㎏)도 충돌 순간 앞좌석 머리 지지대에 턱을 부딪친 다음 몸이 천장까지 떠올랐다.
이날 실험은 두 달 뒤 차량 뒷좌석 안전벨트 의무착용 시행을 앞두고 차종 2대가 동일한 속도로 충돌했을 때 뒷좌석 안전벨트 착용 유무에 따른 부상 피해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실험 결과, 머리에 중상(6~24시간 의식불명에 빠지거나 함몰돼 골절)을 입을 확률이 안전벨트를 맸을 때 성인은 4.8%, 어린이는 3.7%였는데, 미착용 땐 14.5%, 4.5%로 각각 3배, 1.2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허벅지에 순간 가해지는 힘도 착용 시엔 성인ㆍ어린이가 각각 17kg, 5kg의 하중을 받았는데, 매지 않으면 무려 752kg, 399kg으로 44.2배, 79.8배나 늘었다. 박진호 보험개발원 자동차연구소장은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안전할 것이란 생각에 벨트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고 때 중상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탑승 자세에 따라 위험성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사고 때 다른 탑승객을 다치게 할 위험도 더 컸다. 전용범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시험연구팀장은 “실험과 달리 실제사고는 정면뿐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충돌하기 때문에 뒷좌석 탑승객이 앞으로 튀어나가 운전자나 조수석 승객과 부딪쳐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통당국의 꾸준한 계도로 국내 운전자들의 앞좌석 안전벨트 착용은 선진국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뒷좌석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국제도로교통사고데이터베이스 통계 기준 국내 앞좌석 안전띠 착용률은 94%로, 프랑스(99%)와 독일(98%) 등에 근접했지만 뒷좌석은 30%로 이들 국가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더구나 안전벨트 착용은 사고 시 운전자보다 동승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3년간 10개 보험사의 사고분석에 따르면 중상ㆍ사망 확률은 운전자의 경우 착용 유무에 따라 2.9배 차이가 났지만, 동승자는 3.4배로 격차가 더 컸다. 미착용 시 동승자에 대한 사고 보험금 지급은 1.4배 늘어났다. 성대규 보험개발원장은 “안전벨트 착용 생활화로 사고 피해가 줄어들면 보험사 손해율이 내려가 보험료가 인하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천=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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