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이 통화전쟁으로 확전될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에 노골적 불만을 표시하고, 중국 인민은행은 7거래일 연속 위안화 가치를 절하하며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무역에 유리한 만큼 양국이 무역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환율 조정을 꾀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금리가) 올라갈 때마다 그들(연준)은 또다시 올리려고 한다”며 “나로서는 정말이지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법적 독립성이 보장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개입성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에 대놓고 반대한 셈이다. 올해 들어 연준은 3월과 6월에 각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고 연내 두 차례 추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미국 실물경기가 수출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유럽이나 일본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중국의 통화 가치도 하락하고 있는데 우리 통화 가치만 올라가고 있다”며 “우리(정부)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자신이 임명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해 “매우 좋은 사람이지만 그에게 동의하진 않는다”고도 했다.
시장에선 연준이 대통령 발언과 무관하게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선 향후 연준의 금리 인상의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압력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셰인 올리버 AMP캐피탈마켓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장기적으로는 트럼프와 포퓰리즘이 저물가를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인민은행은 20일 달러ㆍ위안 기준환율을 전일 대비 0.0605위안(0.89%) 오른 6.7671위안으로 고시했다. 고시 환율 기준으로 지난해 7월14일(6.7774위안) 이후 1년 만에 최고치(위안화 약세)이고, 일간 절하폭으로는 2016년 6월27일(0.91%) 이후 2년 만에 최대다. 위안화 절하세가 예상보다 가파르자 이날 오전 역외시장에서 달러ㆍ위안 환율은 장중 6.8363위안까지 오르며 지난해 6월27일(6.8586위안)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위안화의 급격한 절하를 용인하는 듯한 중국 당국의 태도를 두고 시장에선 중국이 무역전쟁 도구로 위안화를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아르젠 반 디이크후이젠 ABN암로 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가 3월 고점 대비 8%가량,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된)6월 중순 이후로는 5.5% 하락했다”며 “미국의 관세 상승에 따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환율 약세가 이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중국의 통화가치 절하가 증시 폭락으로 이어졌던 2015년 8월 및 2016년 1월의 경험을 들어 중국 인민은행이 적정 시점에서 환율 관리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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