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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관료들이 행복한 나라

입력
2018.07.20 19:04
수정
2018.07.21 17: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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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관료들이 고품격 주연이다. 간부들은 티타임에서 간밤의 정황을 분석하고 부처 고시 인맥 속 학연과 지연을 체크한다. 매일 반복되는 비판에도 위계질서와 조직은 거대한 관료제로 조금씩 완성된다. 70여년 전통의 대한민국 공직사회는 이제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중앙 관료부터 지방, 시ㆍ군ㆍ구까지 공무원은 선거철이면 잠시 주인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이지만 이내 다시 주인공이 되고 권력의 정점에 자리 잡는다.

하나, 농민이 봉인 나라.

귀농, 귀산, 귀촌을 장려하는 입장에서 관료를 보면 중앙에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진흥청, 산림청이 포진한다. 시도 농정국과 도 농업기술원, 지방산림청이 있다. 시ㆍ군ㆍ구에는 농업, 축산, 산림, 농업기술센터 등 행정조직이 펼쳐져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어촌공사, 단위농협, 유통공사 등 공공기관, 각종 협회와 단체가 농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존재한다. 농민은 약 104만 가구다. 올해 농림부 예산은 14조원이다. 결국 농민 한 명에 관료와 공공이 몇 명씩 붙어서 살아간다. 농민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비효율과 예산 낭비, 안일주의로 빠져서는 곤란하다.

둘, 규제해야 안심되는 나라.

충북 영동에 있는 포도농가에 갔다. 와이너리를 만들고 6차 산업에 매진하는 농가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규제 때문에 못 살겠다는 것이다. 포도생산은 농림부, 기술지도는 농진청, 제조는 식약처, 판매와 세금은 국세청 지시를 건건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공무원들은 자신들 이야기만 명령한다. 상충되는 타 부처 이야기는 ‘우리는 모르고, 책임은 농가가 전담하라’는 식이라고 원통해 한다. 동일사업이 융ㆍ복합하거나 연속사업으로 추진될 때는 기본이 되는 뿌리 부처가 총괄책임제로 하면 좋겠는데 어려운 모양이다.

셋, 관료가 주인인 나라.

흔히 고시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는 ‘관료가 주인인 세상’ ‘공직자가 군림하는 관존민비 체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한다. 관료는 헌신과 봉사가 생명이다. 정권 입맛에 맞춰 직업이 공무원인 영혼 없는 조직을 운영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관료들은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처럼 끊임없이 변신한다. 정권 신뢰와 시대정신을 활용해 빠르게 적응한다. 반성도 사과도 자책도 없다. 상황에 따라 색깔과 완장을 바꿔 차고 어제를 망각한 권력자가 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하루아침에 금지곡을 찬양가로 거리낌 없이 바꿀 수 있는 조직이다. 항상 표리부동하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변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진다.

관료들의 발은 오리발이다. 그들의 철학은 ‘내로남불’이다. 정치인의 잘못은 위법이지만 관료의 잘못은 실수라고 자위한다. 정치인은 잘못하면 감옥에 가지만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공격한 경찰라인은 무죄와 집행유예로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당시 연관된 해경 간부 중 일부는 여전히 승진했으며, 관피아는 좀 더 은밀하게 그들만의 천국을 구축한다. 지난해 한겨레신문의 설문 조사에서 검찰 개혁(30.3%) 다음으로 관료 개혁(24%)을 요구했다.

관료들이 가진 재능 중에 가장 뛰어난 재주는 무엇인가. 세월호, 검경 개혁, 적폐 청산, 일자리 등 이슈가 터지면 공식처럼 공무원 개혁을 스스로 외친다. 그때마다 관료들은 위기를 호기로 역전시킨다.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새로운 조직으로 자신들의 향상된 규제권을 갖고 ‘슈퍼 갑’으로 비상한다. '역할과 소임이 끝나도 공무원 정원은 업무와 상관없이 증가한다'는 파킨슨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넘쳐나는 관료의 규제는 기업의 자율과 창의를 억압하고 민간은 새로운 규칙에 숨죽인다. ‘개돼지가 아닌’ 국민이 함께 만드는 유연한 공직사회. 과연 올 것인가.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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