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식 비례대표제가 진짜 도입될까.
현행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에 대한 비판은 오래됐다. 사표가 많아 국민 의사가 정확히 반영되지 않는다, 고로 투표율이 낮아진다, 양당제가 고착화되면서 소수 정당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의회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의회에서 배제된다, 장외에 방치된 정치세력들이 극단화된다, 여기에다 승패에 따라 ‘100% 아니면 0%’인 구도라 정치가 극한 투쟁으로만 내달린다 등. 열거하기 숨찰 정도로 많다. 그래서 각 정당들이 실제 지지율에 비례해 의석을 가져가고, 다양한 세력의 연정을 통해 의회가 운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 됐다.
그럼에도 독일식 비례대표제엔 ‘불가능’이란 딱지가 붙어 있었다. 강남과 영남, 단단한 두 개의 지지기반을 지닌 자유한국당 계열에겐 소선거구제가 이롭기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987년 체제’ 이후 치러진 역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은 실제 얻은 표에 비해 30% 정도 의석을 더 가져갔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남는 장사를 그냥 포기할 리 없다. 다른 당들의 제도개혁 요구를 외면했다.
이게 깨진 게 ‘박근혜 탄핵’이다. ‘박근혜는 피해자’라는 이들이 여전히 20%대를 넘나들지만, 소선거구제 아래 이 정도 지지율은 전멸을 각오해야 한다. 이 가능성은 지난 6ㆍ13 지방선거에서 현실이 됐다. 곤혹스러운 건 다가올 2020년 총선이다. 지방선거 직후 JTBC 시사예능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한 유시민은 ‘지방선거 결과를 총선으로 환산하면 민주당이 250여석, 자유한국당이 40여석, 나머지 당이 10여석’이란 얘기까지 했다. 제도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리던 당이 가장 큰 위기에 몰렸으니 제도 개혁 가능성은 높아졌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취임하자마자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꺼내든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마침 독일식 비례대표제에 대한 책이 나왔다. 독일 쾰른대 정치학 박사 출신인 조성복 독일정치연구소장의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이다. 독일 의회 운영방식, 기사ㆍ기민ㆍ자민ㆍ사민 등 각 정당에 대한 소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작동 방식, 이 제도를 우리나라에 적용했을 경우 의석 분포 시뮬레이션 등을 담아뒀다.
독일식 비례대표제에 대한 연구보고서와 책들은 이미 많다. 이 책은 그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자신의 체험담과 함께 담았다. 조 소장도 “정치학자들은 물론, 정치계 인사들도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답이란 건 다 안다”면서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국민들께 왜 제도개혁이 필요한 지 자세히 설명드리고 싶어서 썼다”고 말했다. 책 내용과 보충적으로 묻고 답한 인터뷰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주장은 오래 됐다. 중요한 건 실현 가능성이다.
“높다고 본다. 지금 모든 정당의 화두는 ‘2020년 총선’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가장 반대한 게 자유한국당이었는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자유한국당의 참패가 자신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민주당 등에선 이 참에 자유한국당을 주저앉혀버리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다. 지금이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탄탄하고 남북관계 지지가 높으니 괜찮다지만, 그게 서서히 가라앉은 2020년과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것인가. 최저임금, 주52시간 논란에 이어 성장률, 부동산, 교육, 고용 같은 이슈들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2020년 가면 이미 정권 말기다. 민주당도 자유한국당처럼 훅 가는 건 순식간이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모든 당에게 안정적인 토대를 제공해준다. 그 토대 위에 예측 가능한 정치가 이뤄진다.”
-강력한 개혁에 대한 열망 때문에 ‘의회의 타협’을 부정적으로 본다.
“강력한 개혁을 위해서라도 독일식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보라. 문 대통령 지지율 엄청나다. 그런데도 의회에선 힘이 없다.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 의회 입법을 통한 제도화된 개혁이 무엇이 있었는지 한번 꼽아보라. 문 대통령 지지도가 그렇게 높고, 우리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한탄한다는 데 별로 크게 바뀐 건 없다. 독일은 연립정부가 출범하면 입법안 가운데 90%는 그 정부가 내놓은 법안이다. 총선 한번 치르면 국민이 선택한 방안이 입법을 통한 제도화된 개혁으로 결실을 맺는다. 어느 쪽이 나은가. 그리고 이미 한국 사회는 단순한 사회를 넘어섰다. 온갖 복합적 모순이 다 있는데, 그걸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줬으니 당신이 다 해결하시오’라고 말하는 것도 지나치다. 독일식 비례대표제 아래 만들어진 입법안은 각 당의 합의와 조율 끝에 나온 거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이다.”
-선명성이 중요한 한국에서 타협이란 곧 죽음이다.
“그래서 ‘협치(協治)’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독일의 연정이 ‘구국의 결단’ 같은 게 아니다. 권력은 잡고 싶은데 의석이 부족하니 자기 당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절해 타협한 뒤 손 잡는 거다. 정치인들이 착한 이웃들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오손도손 지내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치열하게 협상해서 양보하고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정치가 예측 가능해진다. 물론 죽어도 양보 못하겠다면 그냥 소수정당으로 남는 거다.”
독일정치, 우리의 대안
조성복 지음
지식의날개 발행ㆍ328쪽ㆍ1만7,000원
-대통령제 선호도가 워낙 높다.
“최선은 내각제다. 거의 모든 정치학자, 정치인 치고 이걸 부인하는 사람 못 봤다. 그런데 한국에선 김종필 전 총리가 제안하는 바람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제안하고픈 건 내각제가 안되면 일단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의회를 구성하는 거라도 하자는 것이다. 독일도 기민당, 사민당 거대 양당이 압도적 1, 2위를 다투는 것은 변함없다. 대신 지역구 의석은 0석에서, 많아야 3~4석에 그치는 소수 정당들이 비례 표로 보정받아 20~30석 얻어 의회에 진출하고, 이런 정당들이 합종연횡을 하면서 새로운 정책을 도출해낸다. ‘새 정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이렇게 이뤄지는 거지, 안철수 같은 대형 신인 1명 툭 튀어나와 세를 불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의회만이라도 이렇게 바꾸고 국민들의 경험치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내각제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본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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