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는 책을 읽기도 힘들다. 여름철에 어울리는 책으로 미스터리 장르문학을 손꼽고 휴가지에 들고 갈만한 책으로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을 추천하는 건 언뜻 구태의연해 보이지만 그게 정말 적절한, 최상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몸도 머리도 내 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꼼짝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굳이 어렵게 끌고 갈 필요가 없다.
시원한 동시를 찾아보다가 ‘바다’라는 제목에 눈길이 확 꽂힌다. 바다를 노래한 시가 아니라는 건 첫 행부터 알 수 있다. 바다는 강아지 이름이란다. 제주에서 왔기 때문이라는데 참 예쁜 이름이다 싶다. “아주 조고만 섬”이라니 아주 작은 강아지겠지. “순둥이예요”라고 덧붙이는 다섯 글자 짧은 말에 아주 작은 강아지를 향한 마음이 담뿍 담겨있다.
바다는 바다가 아니고 강아지였지만 강아지가 바다이니 바다를 떠올리게 된다. 아주 작은 강아지는 조그만 섬이니까, 식구들이 들어오면 만선한 고깃배로 흥성거리는 부두이고, 식구들이 나가면 외로운 항구이다. “등대처럼 귀만 세워” 온종일 집 지키며 식구들을 기다리는 건 바다뿐 아니라 모든 강아지의 일일 테니 이제 이 시를 통해 모든 강아지는 바다가 된다. 시를 읽은 식구들은 집에서 기다릴 각자의 강아지를 생각할 때마다 아주 작은 강아지, 바다를 떠올리겠지.
이 동시는 대표적인 시조 시인인 정완영(1919~2016)의 동시조이다. 동시가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이듯 동시조는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조다. 시조를 두고 현재로선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장르로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정완영의 동시조에서는 동시와 아주 가깝고도 또 다른 시조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간결한 운율로 번다하지 않게 말하지만 종장의 비약과 울림으로 큰 뜻을 지닌.
“염소는 수염도 꼬리도 쬐꼼 달고 왔습니다/울음도 염주알 굴리듯 새까맣게 굴립니다/똥조차 분꽃씨 흘리듯 동글동글 흘립니다”(‘염소’ 전문)
동시와 동시조 모두 여름에 어울리는 문학 장르다. 사계절은 물론이고 여름에도. 염소 울음 동글동글 굴리듯 동시와 동시조를 동글동글 굴리며 읽고, 분꽃씨 같은 똥 동글동글 흘리듯 수박씨 같이 시원한 웃음 동글동글 흘려보시길.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