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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 봉사활동 판 깔아주는 유럽… “자존감 UP”

입력
2018.07.20 04:40
수정
2018.07.20 07:5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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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반려견 돌봄 봉사’ 

 민간단체가 노인 3300명 활동 지원 

 젊은 견주들과 연결해줘 친분 맺고 

 반려견 매개로 이웃과 대화 늘어 

 “심리적으로 건강해졌다”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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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다세대주택 프로젝트’ 

 난민 청소년에 수학 가르치는 등 

 노인들 경력 살려 다양한 봉사활동 

 “사회에 도움 돼 뿌듯하고 희열” 

 청년-노인 교류 세대통합 효과도 

테오 닌하위스씨가 지난달 1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골목에서 이웃집 요코씨의 반려견 토토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테오 닌하위스씨가 지난달 1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골목에서 이웃집 요코씨의 반려견 토토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달 1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골목길.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이 눈가까지 뒤덮은 50㎝ 남짓한 강아지 토토(4)가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있다. 토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테오 닌하위스(68)씨는 “이 녀석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니까”라며 싱긋 웃었다.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닌하위스씨는 목요일 아침만 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난다. 1주일에 한 번 아랫집 요코(40)씨의 반려견 토토와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닌하위스씨는 1년 전 노인과 이웃의 견주를 이어주는 민간단체 오포(OOPOEH)를 통해 요코씨의 강아지 토토와 인연을 맺었다. 10년 전 아내를 잃은 그는 키우던 반려견마저 고령으로 죽게 되자 상실감에 빠졌다. 2년 뒤 호주에서 교수직을 은퇴하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겨줄 이는 없었다. 그러던 중 2014년 6월 오포에 지원했고 한 노인의 반려견을 돌봐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부터는 토토와 매주 목요일(오전 8시~오후 8시)을 보내고 있다.

사회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노인들이 낙담하고 나아가 일상을 분노로 채우는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 쓰임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다. 노인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줄 일자리가 중요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인정을 받을만한 ‘행동의 장’이 필요한 이유다. 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고령자(65세 이상)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18.7%에 달해 우리(14.1%)와 마찬가지인 고령사회다. 그럼에도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자존감이 낮고, 분노를 터트리는 노인을 만나기 힘들다. 닌하위스씨처럼 행동할 기회와 자리를 넉넉히 누리는 ‘액티브 실버(Active Silverㆍ활발한 노인)’들 덕분이다.

토토와 함께 암스테르담 시내를 산책하고 동네 카페에 들어서면 강아지를 주제로 한 이웃들과의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닌하위스씨는 “그동안 서먹하게 지나쳤던 이웃들이 이제는 내가 홀로 거리를 다녀도 ‘토토 어디 갔냐’고 물을 정도로 자연스레 인사하는 사이가 됐다”라며 “요코씨가 간식의 양을 정해 놓고 주라고 이야기했지만 토토가 귀여워서 자꾸 군것질거리를 주게 된다. 요코씨가 알면 혼나겠다”고 웃었다.

소피 브라워(오른쪽) 오포 대표와 그의 이웃집 오포가 브라워 대표의 반려견을 사이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오포 제공
소피 브라워(오른쪽) 오포 대표와 그의 이웃집 오포가 브라워 대표의 반려견을 사이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오포 제공

네덜란드의 오포는 노인을 위해 설계된 창조적인 사회적 활동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들의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어로 노인(할머니)을 뜻하는 OPOE의 발음에서 명칭을 착안한 민간단체 오포(OOPOEH)는 고독하게 사는 노인과 이웃의 반려견을 연결해 노인의 사회적 교류를 늘려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에 무료로 자원봉사를 신청한 오포(반려견을 돌보는 노인)의 프로필이 온라인에 등록되면 견주들이 집 인근의 오포에 연결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후 반려견을 돌볼 환경을 갖췄는지 등을 따져본 뒤 스케줄을 조율해 평균 주 1~2회가량 견주 대신 반려견을 돌보게 된다. 설립자 소피 브라워씨는 “오포의 취지는 애정과 사회적 관계가 필요한 노인들을 강아지를 매개로 이웃과 연결해 더욱 활동적으로 살도록 하는 것”이라며 “강아지에 대한 애정은 오포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지만 반드시 키워본 경험을 요구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견주가 평일 근무시간 전부를 맡아달라고 요구하는 등 오포를 펫시터(반려동물을 돌보는 사람)로 여기는 것은 설립 취지에 맞지 않아 거절한다”라고 말했다.

201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한 오포는 인기를 끌면서 현재 네덜란드 전역에 견주 3,500명, 활동하는 오포(55세 이상)는 3,300여명을 두고 있다. 오포와 매칭되는 견주들은 경제적 활동이 활발한 35~50세가 대다수이며 오포의 평균 연령은 65세다. 하지만 최고령 오포는 무려 102세일 정도로 열정적인 노인 참여자들이 상당수다. 브라워 대표는 “처음에는 노인을 대상으로 기획했지만 노인이 되기 직전 세대도 오포 활동을 통해 미리 외로움을 줄일 수 있도록 55세 이상으로 오포의 연령을 낮췄다”라며 “100세 이상 노인도 여럿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회원들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오포에 참여하는 노인은 전적으로 무료로 활동하고 있으며, 단체는 견주로부터 한 마리당 월 15유로(약 1만9,700원)를 받고, 일부 기부금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오포의 장점은 반려견이라는 공통 주제를 매개로 쉽게 이웃과 대화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닌하위스씨가 가장 크게 체감하는 점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을 꼽았다. 특히, 남남처럼 지냈던 견주 요코씨는 이제 닌하위스씨의 가장 친한 이웃이자 친구가 됐다. 닌하위스씨는 “요코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어 서로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요즘 사람들이 그렇듯 아예 인사도 하지 않는 이웃이었다”라며 “하지만 오포로 인연을 맺은 뒤부터는 가족처럼 친해져 지난해 내가 아파 외출을 못 했을 때는 집에 와 간호를 해줬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토토와 함께 밖을 나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브라워 대표는 “한 오포의 경우 이탈리아 이민자인 견주의 반려견을 돌볼 때 강아지가 이탈리아어만 알아듣자 직접 이탈리아어를 배워 반려견과 지내기도 했다”라며 “이후 반려견이 죽게 됐지만 이웃으로서 견주와 교류는 계속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반려견을 매개로 노인들의 사회 활동과 이웃 교류를 촉진시키는 오포는 참여자들을 위한 트레이닝과 소풍 등 다양한 이벤트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포 제공
반려견을 매개로 노인들의 사회 활동과 이웃 교류를 촉진시키는 오포는 참여자들을 위한 트레이닝과 소풍 등 다양한 이벤트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포 제공

이외에도 오포는 활동하는 노인들을 한데 모아 반려견 훈육 방법을 교육시키고, 주말이면 견주들과 교외로 소풍을 가는 등 다양한 네트워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의 회계컨설팅기업 PWC가 2016년 오포로 활동한 노인 1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오포를 통해 이웃간 교류가 증가했다’고 답한 이들이 71%였으며, 견주와의 관계가 긍정적이라고 답변한 이는 90%에 달했다. 한 달에 최소 1번 이상 활동한 오포 10명 중 8명(82%)은 심리적으로 건강해졌다고 답했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50세 이상 인구 중 공식적 봉사활동 참여율이 37.9%로 조사 대상 18개 OECD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을 만큼 노년 인구의 봉사활동이 흔하다.

오포 활동은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긍정적으로 바뀌게 했다. 닌하위스씨는 “주변에 보면 자전거를 타면서 길이 막히면 금방 경적을 울리고, 종업원이 바로 도와주지 못하면 쉽게 화를 내는 노인들이 있다”라며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 느끼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면 그렇게 되기 쉽다. 나 역시 교직에서 은퇴한 뒤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죽을 생각마저 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오포가 주는 기회를 통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경력을 살려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활동 역시 노인들의 정서적 건강을 돕는 쉬운 방법 중 하나다. 지난달 13일 독일 베를린의 피닉스 ‘다세대주택(MGHㆍMehrgenerationenhaeuser)’에서 만난 빌프리드 리츠레덴(76)씨는 한 난민 청소년에게 한창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MGH는 독일 정부가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세대 간 교류를 확대시키기 위해 만든 주민 자치센터 개념으로 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이곳의 문화 교류, 교육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수 있다. MGH를 지탱하는 한 축인 노인들은 젊은 시절 경력을 살린 봉사활동으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피닉스 MGH의 자원봉사자 60명 중 40명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노인들의 참여율이 높다. 대부분 청소년을 상담해주거나 교육하는데 이들의 지혜와 경험이 요긴하게 사용된다. 굳이 교직에 있지 않아도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면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다. 난민 청소년뿐만 아니라 누구나 무료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가 좋다.

30년간 교단에 선 리츠레덴씨는 이곳에서 5년째 난민 청소년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전공했던 수학, 물리와 독일어 등을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방과후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리츠레덴씨는 “원래 학교에서 가르쳐온 일이라 봉사활동 하는 게 전혀 힘들지 않다”라며 “아이들이 잘 배워 학교에서 성취도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져 멈출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팀 레만 피닉스 MGH 담당자는 “우리 MGH의 목표는 10년 뒤 2배로 늘어날 80세 이상 노인들을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삶의 목표를 주고 보다 활동적으로 이끄는 일”이라며 “이곳을 찾는 노인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 역시 노인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면서 노인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을 배우는 등 대화하는 방식을 익히며 세대 통합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68세인 피터 이로프씨는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계약직으로 베를린의 중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건강한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로프씨 제공
68세인 피터 이로프씨는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계약직으로 베를린의 중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건강한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로프씨 제공

피터 이로프(68)씨는 은퇴할 나이를 넘었지만 여전히 교단에 서고 있다. 베를린의 한 중등학교에서 8~10학년(15~17세)을 대상으로 30년간 수학을 가르쳤던 그는 65세가 되던 해 은퇴했지만 지금도 2년째 계약직으로 여전히 수업을 진행한다. 최근 선생님이 부족해진 베를린은 은퇴한 고령의 교사 중 신청한 이들에 한해 계약직으로 고용하면서 이로프씨도 일을 더 할 수 있게 됐다. 키가 2m가 넘는 그는 매일 20㎞씩 자전거를 탈 정도로 자기 관리에 투철하다. 이로프씨는 “지금도 학생들이 와서 질문하고 젊은 교사들이 조언을 구할 때면 희열을 느낀다”라며 “언제든 그만둘 수 있지만 젊은 동료들의 방식을 존중하고 배워나가는 게 즐겁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배움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계속 주위에 있는 이들로부터 배우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ㆍ베를린(독일)=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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