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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듣고 쓴 조선말 되살려… 27년 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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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듣고 쓴 조선말 되살려… 27년 걸렸네요”

입력
2018.07.18 16:11
수정
2018.07.18 20:1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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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국수’ 완간한 김성동 작가

19세기 후기의 민초 이야기

이해 도우려 ‘국수사전’ 도 펴내

김성동 작가. 솔출판사 제공
김성동 작가. 솔출판사 제공

기인이 그와 같은 모습일까. 여섯 권짜리 대하소설 ‘국수(國手)’를 27년 만에 완성해 펴낸 김성동(71) 작가 말이다. 대하소설이라지만, 서사는 주인공이 아니다. 김 작가의 관심은 온통 언어다. ‘아름다운 조선말’을 기억에서, 기록에서 찾아내 소설에 풀어놓는 것을 그는 소명으로 여긴다.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김 작가는 “중국의 한독, 일본의 왜독, 서양의 양독에 짓밟혀 우리 말이 다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다름 아니다’는 말을 보자. 다르면 다른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대체 무슨 말인가. 배배 꼬아 돌린 서구식 번역체 복문이다. 우리 언어가 없으니, 문체가 패륜적이고 범죄적인 소설이 난무한다. 다문화시대라는 걸 나도 안다. 배타하자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다문화로 가기 위해서라도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거다.”

조선시대 지배계급의 언어는 현대로 전해졌지만, 중인, 천민의 언어는 사라졌다. 부끄러운 것, 그래서 잊어야 할 것이었던 탓이다. 김 작가는 그 ‘천한 언어’를 살리려 애썼다.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에 아쉬운 점이 있다. 양반과 백정이 쓰는 말이 같다는 거다. ‘국수’엔 내가 어릴 때 듣고 쓴 말을 그대로 썼다. 그냥 쓴 게 아니고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고 썼다. 그 작업이 너무나 힘들었다.” 김 작가는 요즘도 세로로 내려 쓰는 원고지에 글을 쓴다고 한다.

언어가 지나치게 예스럽고 구성진 나머지, ‘국수’를 읽는 건 쉽지 않다. 김 작가는 ‘국수사전 - 아름다운 조선말’을 여섯 번째 권으로 지어 보탰다. 소설에 나오는 단어, 표현, 속담을 풀어 쓰고 인물을 소개했다. ‘슬갑도적질= 남의 글귀를 몰래 훔쳐 그것을 그릇 쓰는 사람을 웃는 말’ ‘시러금= 능히, 넉넉히, 잘’ ‘붙들 언치 걸 언치= 남 덕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를 알맞은 자리에 추켜세움이 쓸 데 있다는 뜻’ 식으로 빽빽하게 채운 우리말 사전이다.

솔출판사 제공
솔출판사 제공

소설은 바둑 천재 소년 석규와 노비로 태어난 천하장사 천만동, 불교 비밀결사체를 이끄는 철산화상, 기생 일매홍 등 조선 후기를 산 무명씨들의 이야기다. 19세기 후반 충청 내포 지역이 배경으로, 정통 역사소설보다는 민담에 가깝다. 바둑이 나오긴 하지만, 바둑소설이라 한정할 순 없다. “조선 말은 말 하나에 여러 뜻이 있었다. 손 ‘수(手)’자가 말하듯, 국수는 재주가 뛰어난 자에게 바친 민중의 꽃다발이다.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 작가가 역사소설을 쓴 사연. 선친의 남로당 활동 경력 때문에 출세 길이 막히자, 김 작가는 19세 때 입산했다. 1970년대 승려 신분으로 쓴 종교소설의 일부가 종단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돼 12년 만에 강제 하산했다. 소설은 계속 썼다. 방황하는 구도자를 다룬 장편소설 ‘만다라’(1978)가 출세작이다. “1980년 들어 잡지, 신문에 현대소설 연재를 시작했으나, 검열에 걸려 거푸 잘렸다. 원고 청탁이 아예 끊겨 사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피 어린 현대사는 쓰지 않기로 했다.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들은 이야기를 썼다.” ‘국수’도 그 중 하나다. 1997년 문화일보 창간 때 연재를 시작했다 중단한 것을 고쳐 썼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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