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럽 순방 마치고 귀국
유럽언론서 “외교 재앙” 혹평 쏟아져
“나토보다 푸틴과 회담 더 좋아” 트윗도
“5일간의 외교 재앙.”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자신의 허영을 위해 유럽 동맹을 희생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
1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끝으로 유럽 순방을 마치자 유럽 언론은 일제히 혹평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맹의 대부분인 유럽연합(EU)과 영국의 지도자를 향해 온갖 비난을 서슴지 않은 반면, 나토의 ‘적’으로 설정된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는 비난을 삼가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담 시작부터 독일을 “러시아의 포로”라고 저격하고, EU가 미국과 통상 마찰을 빚고 있다는 이유로 “유럽은 적(foe)”이라고 표현했다. ‘소프트 브렉시트(EU 탈퇴)’ 방안을 제시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향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협상을 하고 있다”라며 “영미 무역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서구 동맹국에 공세를 쏟아낸 트럼프 대통령은 정작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유럽-러시아 관계의 경색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우크라이나 내전과 크림 반도 합병에 트럼프 대통령이 침묵했다는 점이 유럽에는 ‘동맹’을 다시 생각할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은 러시아의 고삐를 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다른 발칸 국가에서 유사한 상황이 일어날 때 미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국제규정과 이념 측면에서 트럼프 정부와 충돌하는 EU를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특히 독일의 반발이 거셌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전 독일 부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겨냥해 ‘레짐 체인지’를 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제프 야닝 유럽외교협회(ECFR) 베를린지부장은 도이체벨레에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 공격을 통해 EU 흔들기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영국 방문도 ‘특수관계’라는 별칭까지 붙은 양국 관계에 우려를 남겼다. 영국이 비록 브렉시트로 EU와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무역 정책이나 기후변화 대응 등 여타 의제에선 트럼프 정부와 입장 차이가 크다. 13일 런던에서 열린 대규모 반(反)트럼프 시위와 이를 회피한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은 흔들리는 영미관계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트위터를 통해 “나토와 훌륭한 회의를 했다. 나토는 약했지만 이제 다시 강하다(러시아엔 안 좋은 일이다)”라고 밝히며 ‘나토 달래기’에 나섰다. 다만 “그들(나토)은 오로지 나 때문에 (방위비) 330억달러를 더 냈다. 장래에는 수천억달러를 더 쓸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 결국 자신이 대러 견제 역할을 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곧이어 “나토 정상회담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회담이 한결 더 좋았다”는 트윗을 올리며 자신의 ‘친러 본색’을 드러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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