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미국 대선 개입 부인
미국과 공동 조사 가능성 열어둬
트럼프 “러시아가 개입할 이유 보지 못해” 푸틴 두둔
공화당 일각에서도 “경고 기회 놓쳐 “최소한의 비판 조차 안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대선 개입을 부인하는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이나 주류 언론 뿐만 아니라 공화당 일각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먼저 마이크를 잡은 푸틴 대통령은 “이른바 '러시아 개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다"면서 "나는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 말한 것을 반복해야 한다. 러시아는 절대 개입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미국 내부 문제에 개입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로버트 뮬러 특검은 13일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서버를 해킹한 혐의 등으로 러시아 정보요원 12명을 무더기 기소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뮬러 특검팀이 공식 요청하면 우리는 그들을 조사해 적절한 자료를 미국에 보낼 것이다”며 “나아가, 특검팀을 포함해 미국측 대표가 들어와서 심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공동 수사 가능성도 열어놨다. 그는 다만 “이것은 상호적이야 한다. 러시아 영토에서 불법적 활동을 한 미국 정보요원을 포함한 관리들도 심문하기를 바라고, 거기에 우리 수사 요원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푸틴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믿을 수 없는 제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대해선 “댄 코츠(국가정보국 국장)와 다른 사람들은 내게 와서 ‘이것은 러시아 소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아니다고 말했다”며 “나는 러시아가 그렇게 할 이유를 보지 못했다”며 미국 정보기관이나 수사 당국 보다 러시아를 더 신뢰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 정보기관에 대단한 신뢰를 갖고 있지만, 오늘 푸틴 대통령의 부인은 매우 강력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러 관계가 악화한 데 대해선 “미국이 바보 같았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에 이런 대화를 했어야 했다”며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이나 미 대선 개입 등을 비판하지 않고, 미국의 전임 행정부을 겨냥한 양비론을 편 것이다.
그는 2016년 대선에서 자신과 러시아간 공모가 없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특검 수사는 우리 나라에게 재앙이다”며 “우리를 갈라지게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나는 깨끗하고 뛰어난 선거운동을 펼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쉽게 승리했다"며 자신의 대선 승리가 러시아의 도움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기간 러시아와의 공모를 부인하는 차원을 넘어 러시아의 대선 개입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 공화당 내에서도 저자세라는 반발이 나왔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은 정보기관, 수사당국 뿐만 아니라 미 상원도 확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대선개입에 대한 책임을 확고하게 묻고 추후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경고할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우호적인 폭스 뉴스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폭스비즈니스 진행자인 네일 카부토는 “미국 대통령이 우리의 가장 큰 적, 상대국, 경쟁자에게 최소한의 가벼운 비판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당과 주류 언론들은 “수치”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보다 러시아의 이익을 우선시 했다”면서 대러 제재 강화와 백악관 안보팀 청문회 출석 등을 주장했다. 같은 당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러시아가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 재정적으로, 정치적으로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CNN은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의 가장 수치스런 행동 가운데 하나를 지켜봤다”고 논평했고,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합중국의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취임 선서를 버렸다”고 맹비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