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600대 납품해야 하지만
엔진 등 부품 공급 최대 7주 지연
절반 못미치는 600여대 인도 그쳐
항공사들은 여객기 부족에 결항도
영국 중서부 버밍엄시에 거주하는 조안나 발로우와 댄 윈야드는 다음달 가족을 만나러 가기 위해 미국 보스턴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항공사로는 덴마크에 본사를 둔 ‘프리메라항공’을 택했다. 하지만 이들이 예약한 항공편은 돌연 취소됐다. 예약 부진이나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니다. 유럽 최대의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버스’가 프리메라항공에 새 여객기를 제때 납품하지 못하는 바람에, 해당 시간대에 운항 가능한 비행기가 ‘없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시간대를 바꿔 다시 예약했지만, 귀국 항공편이 또 취소됐다. 발로우는 “모두들 ‘비행기 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항 사태가 빚어질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세계 항공기 제작업계의 양대 산맥인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가 ‘납품 지연’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민간 항공사들의 새 여객기 주문량이 급증한 반면, 엔진과 날개, 동체 등 핵심 부품 공급은 이를 따라잡지 못해 ‘완제품(비행기) 인도’가 늦어지고 있다. 납품 기일을 맞추려는 보잉과 에어버스의 악전고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항공사들은 노선 변경 또는 일부 항공편 취소 등으로 대처하고 있어 결국에는 승객들의 불편으로까지 이어지는 모습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보잉과 에어버스가 생산을 마쳐 세계 각국 항공사에 납품해야 할 여객기 물량은 총 1,600대를 웃돈다. 2000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데니스 뮬렌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20년간 상업용 항공기의 인도 물량은 약 7조달러 규모인 4만3,000대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년 예측치보다도 2,000대 증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객기 주문이 폭주한 까닭은 항공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올해 항공 승객이 44억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2010년(27억명)에 비해 무려 63%나 늘어난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항공사들이 구형 항공기를 연료를 덜 쓰는, 더 효율적인 신형 비행기로 바꾸려 시도하면서 그 수요가 더 폭증하고 있다. 항공기 제작사들로선 ‘계약 건수 증가’라는 호재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부품 공급 지체’ 현상이 보잉과 에어버스를 괴롭히고 있다. 에어버스는 프리메라항공, 브리티시항공 등에 대한 중단거리 여객기 ‘A320 네오’의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했다. 엔진 공급 업체로부터 최대 7주일이나 넘도록 엔진을 받지 못해서다. 새 항공기를 투입할 계획이던 항공사들은 일부 노선 취항을 보류하거나, 다른 비행기를 서둘러 빌려야 했다. 브리티시항공의 모회사인 IAG그룹의 윌리 월시 CEO는 “에어버스의 공급 능력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올해 예정된 납품 대수가 800대인 에어버스가 6월 말까지 실제로 인도한 물량은 303대에 그친다.
아직 납품 기일을 넘긴 적은 없다 해도 보잉 역시 ‘엔진 부족’ 현상에 따른 생산 차질을 겪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연말까지 810대를 납품해야 하지만, 현재 납품 실적은 절반에 못 미치는 378대뿐이다.
문제는 납품 지연이 ‘항공기 구매대금 지불 지연’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항공기 제작사들은 최종 완성품을 항공사에 인도한 다음에야 대금을 수령하게 된다. WSJ는 “수년간 항공기 제작사들은 새 비행기 수요 급증으로 인해 제 시간에 납품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며 “공급망 재검토와 재편성에 힘을 쏟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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