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브레이크 없는 상승세(원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달러화의 ‘나홀로 강세’ 흐름에도 환율을 유지하며 ‘안전자산’ 대접까지 받았던 원화 가치는 지난달 이후 취약 신흥국 통화보다 더 급락하고 있다. 원화와 연동성이 높은 중국 위안화의 약세, 외환당국의 무대응이 주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5.7원 상승(원화가치 하락)한 1,129.2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0월27일(1,130.5원)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개장 직후 1,130원을 돌파한 원ㆍ달러 환율은 장중 1,130.4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달러당 1,090원대 중후반에 머물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원ㆍ달러 환율은 미중 무역전쟁의 긴장감이 높아진 지난달 말을 전후로 급등세를 타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이날까지 환율 상승폭은 31.39원에 이른다. 한달 만에 원화 가치가 3% 가까이 떨어진 셈으로, 투자자들이 그만큼 원화를 팔아 치우고 달러를 샀다는 의미다.
무역분쟁 확대에 따른 달러화 대비 통화 약세는 신흥국 공통 현상이지만, 문제는 원화 가치 하락 속도가 다른 신흥국보다 더 가파르다는 점이다. 지난 5월 ‘머니 엑소더스(대규모 투자자금 유출)’가 발생하며 신흥국 위기론의 진원지로 꼽혔던 아르헨티나는 5월 달러화 대비 페소화 가치가 전월보다 8% 급락했지만, 최근 한 달간은 3.6% 상승(13일 기준)하며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터키 리라화 역시 최근 한 달간 통화가치 하락폭은 2.3%에 그쳤고, 인도네시아 루피아(-2.2%)와 태국 바트화(-1.8%) 역시 원화보다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원화 환율의 변동성이 높아진 것은 원화와 위안화 가치의 연동성이 높은 상황에서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한달 위안화 가치 하락폭은 3.6%에 이른다.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통상 위안화의 대리(프록시ㆍproxy) 통화로 여겨지는데, 두 통화의 연동 정도를 나타내는 원ㆍ위안 상관계수는 최근 0.9에 근접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같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화 약세는 국내 자체 요인보다 위안화 약세에 따른 동조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개방돼 있는 점이 원ㆍ위안 동조화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는 중국 정부나 인민은행이 통제를 많이 하는 반면 원화는 ‘글로벌 현금인출기(ATM)’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신흥국 중에서도 시장 개방도가 높고 유동성이 풍부하다”며 “이 때문에 위안화 약세에 배팅하고 싶은 투자자들이 원화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외환당국이 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원화 가치 급락에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환율 변동성 억제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경원 이코노미스트는 “정부 입장에서 환율 변동에 크게 대응하지 않으니 시장에서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밀어붙이는 모습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원화 약세 흐름이 당분간 반전되기 쉽지 않다고 전망한다. 김유미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분쟁 이슈가 어떤 방향을 흘러갈지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원ㆍ달러 환율도 당분간 상승 압력을 받으며 등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등은 원화가 상반기에 다른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 때문에 최근 낙폭이 커진 것이라며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찬 회동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원화 약세라기보단 미 달러화 강세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며 “최근 3개월을 보면 원화 흐름은 다른 나라 통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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