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악의 해난 참사인 타이타닉 호 침몰(1912.4.14) 해역에서 헌신적으로 생존자 구조작업을 벌여 해난사의 가장 영웅적 선박으로 꼽히는 영국 국적 여객선 카페시아(Carpathia) 호가 1차대전 당시인 1918년 7월 17일 독일 잠수함 공격으로 침몰했다. 당시 배는 리버풀을 떠나 보스턴으로 가던 중이었다. 승객 57명과 승무원 166명 중 희생자 5명을 뺀 전원은 선장(William Prothero)의 지시에 따라 구명보트로 옮겨 타 영국 전함 ‘HMS 스노드랍’호에 의해 전원 구조됐다.
영국 해운회사 쿠나드사(Cunard Lines)의 대서양 횡단 여객선으로 1903년 항해를 시작한 카페시아 호는 길이 170m에 1만3,500톤 급으로, 승객 2,550명을 수용하고 정상 항해 시 최고 15.5노트(시속 28.7km)까지 달릴 수 있는 배였다. 경쟁사인 화이트스타 사의 타이타닉은 당대 최대인 268m 길이에 2만4,900톤 급 초호화 여객선으로 출항 전부터 단연 화제였다. 영국 사우샘프턴 항을 출항해 뉴욕으로 향하던 타이타닉은 항해 나흘째인 11일 밤 대형 유빙에 충돌해 난파됐다.
크로아티아 피우메(리예카) 항을 떠나 뉴욕으로 향하던 카페시아 호가 타이타닉의 구조 신호를 수신한 건 난파 해역에서 약 107km 떨어진 지점이었다. 카페시아 호의 선장 아서 로스트런(Arthur Rostronㆍ1869~1940)은 즉각 배를 되돌렸다. 최고 속도를 내기 위해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난방 가동을 중단했고, 구조자 치료 및 휴식을 위해 별도의 여객 공간을 확보했다. 칠흑의 밤 최고 속도로 달리기 위해 유빙 관측요원들을 별도로 배치했다. 카페시아 호는 비상 속도인 17.5노트의 속도로 달려 3시간30분만에 사고 해역에 도착, 타이타닉의 구명보트 생존자 710명 전원(1명은 구조 후 사망)을 구조했다. 조사 결과 그는 이 전 과정을 수행하며 23개 명령을 적절히 하달했고, 승무원들은 그의 지시를 허점 없이 이행했다. 카페시아호 승객들도 적극 협조했다고 한다. 구조 승객 중 일부가 그에게 사례를 하자 전액 자신의 승무원들에게 나눠 줬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미국 의회 메달과 영국 기사 작위를 받았고, 1931년 은퇴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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