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달고 있는 별은 내 별이 아니다.”
프랑스 미드필더 폴 포그바(25)는 러시아월드컵 결승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프랑스 축구대표팀 유니폼의 왼쪽 가슴에는 별이 하나 있다. 1998년 자국 월드컵 우승 자격으로 새긴 별이다. 1993년생인 포그바가 6세 때였다. 포그바는 스스로의 힘으로 두 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며 각오를 다졌고 약속을 지켰다.
프랑스가 20년 만에 월드컵 정상에 섰다. 16일(한국시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크로아티아와 대회 결승에서 4-2 승리를 거뒀다. 크로아티아 마리오 만주키치(32)의 자책골에 이어 프랑스 앙투안 그리즈만(27)과 포그바, 킬리안 음바페(19)가 각각 1골씩 터뜨렸다.
1998년 월드컵 우승 당시 ‘캡틴’이었던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은 브라질의 마리오 자갈로(1958ㆍ62-선수, 70-감독), 독일의 프란츠 베켄바워(1974-선수, 90-감독)에 이어 선수, 감독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한 세 번째 인물이 됐다. 이번 월드컵 개막 전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프랑스를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았다. 가장 큰 이유는 데샹 감독이었다. 이 위원은 “데샹 감독은 2012년부터 프랑스 지휘봉을 잡았다. 이 정도 팀을 맡았으면 지금쯤 결과물을 만들어낼 만한 지도자”라고 설명했다. 그 예측처럼 데샹 감독은 공수에 걸쳐 빈틈없는 팀을 만들어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을 정복했을 때 주역인 ‘중원의 마에스트로’라 불린 지네딘 지단을 비롯해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파트리크 비에라 등은 ‘황금세대’라 불렸다. 이들은 2년 뒤 유로 2000까지 제패하며 ‘아트사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20년 뒤 또 다른 ‘황금세대’가 등장했다. 그리즈만은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프랑스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팬들은 지단의 별명인 ‘지주’(zizou)를 본떠 그리즈만에게 ‘그리주’란 애칭을 붙였다. 음바페는 보고도 믿기지 않는 스피드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포그바와 은골로 캉테(27)가 버틴 프랑스의 중원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탄탄했다.
월드컵 결승은 소문난 잔치처럼 먹을 게 없다는 세간의 평을 뒤집는 난타전이었다. 결승에서 6골 이상이 나온 건 1958년 스웨덴 월드컵(브라질 5-2 스웨덴) 이후 60년 만이다.
크로아티아는 16강부터 4강까지 연장을 치른 팀 같지 않게 전반부터 강하게 상대를 압박했다. 전반 점유율도 크로아티아가 60대 40으로 앞섰다. 슈팅도 프랑스는 단 1개, 크로아티아는 7개였다.
그러나 축구는 골로 말하는 스포츠다. 프랑스는 전반 18분 그리즈만의 왼발 프리킥이 만주치키의 머리에 맞고 들어가며 첫 득점을 했다. 월드컵 역사상 결승에서 처음 나온 자책골이었다.
16강부터 선제골을 내주고도 모두 역전극을 펼쳤던 크로아티아의 저력은 대단했다. 선제실점 10분 뒤 이반 페리시치(29)의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허벅지 부상으로 결승에 출전하지 못할 거란 보도를 비웃 듯 페리시치는 자신의 허벅지를 손으로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프랑스에 미소 지었다. 전반 38분 코너킥 상황에서 페리시치의 손에 공이 맞았고 주심은 비디오판독 끝에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그리즈만이 깔끔하게 성공했다.
후반 초반 크로아티아는 다시 프랑스를 몰아쳤지만 체력에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 프랑스는 음바페의 빠른 발을 이용해 역습에 나섰다. 후반 14분과 20분, 포그바와 음바페가 연속해서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뽑아내 크로아티아 수비를 무너뜨렸다. 프랑스는 후반 24분 골키퍼 위고 요리스(31)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틈타 만주키치가 1골을 추격했지만 더 이상 만회골은 나오지 않았다.
월드컵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은 이번에도 준우승 팀에서 나왔다. 크로아티아 루카 모드리치(32)가 주인공이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때도 우승은 독일이 했지만 골든볼은 준우승 팀인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31)가 받았다. 4년 전 메시처럼 모드리치도 맘껏 웃지 못했다.
그러나 415만 명의 작은 인구, 면적도 한국의 절반 밖에 안 되는 ‘소국’ 크로아티아의 투혼과 경기력은 놀라웠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은 불덩어리란 의미의 ‘바트레니(Vatreni)’라 불리는 데 그 애칭처럼 대회 기간 내내 전 세계 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줬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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