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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탐구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입력
2018.07.16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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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뉴필로소퍼’ 제3호

국내외 철학자ㆍ작가 등 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담담하게 최선을 다해야”

나에게 다가오는 내 삶의 의미 같은 건 없다. 그런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에게 다가오는 내 삶의 의미 같은 건 없다. 그런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크다.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누구이고 왜 살아야 하는가.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엔 배부른 헛소리였지만, 이제 점점 더 심각해지는 질문이 됐다. 몸은 편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지니, 이제 이 문제에 골머리를 앓는 이들이 늘어서다. 뭔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나의 삶이란 대체 무슨 의미인가 되묻게 된다.

최근 발행된 계간지 뉴필로소퍼 제3호는 국내외 철학자, 작가 등의 글을 모아 꾸민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 특집을 통해 ‘나답다는 것의 의미’에 일침을 가한다. 하나의 일관된 정체성으로서의 나, 그리고 미리 주어진 삶의 의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먼저 영국의 작가이자 기자인 올리버 버크만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의미 있는 인생을 위한 노력은 행복한 인생에 대한 집착만큼 현재라는 순간의 밖으로 우리는 내몬다”는 점을 깨달았다. 삶의 의미는 탐구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일종의 평정심”이 찾아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히려 “아직도 의미있는 삶을 사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데 감사”하고 그렇기에 지금 “서 있는 지점에 바로 서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글 쓰는 의사 남궁인도 병원에서 자신이 지켜봐야 했던 죽음에 대해 설명하면서 “삶의 의미는 나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있다”라고 결론짓는다. 모두에게 다가올 죽음이다. 그 앞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깊이 생각해보고 담담하게 처신”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 외엔 덧붙일 말이 없다.

미국 텍사스대 철학 교수인 갈렌 스트로슨은 과도한 자아 성찰을 금지한다. 반성하겠답시고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캐묻는 행위는 득보다 실이 크다. 그는 이를 “삶의 전체성이나 서사에 집중하다 보면 자신을 상품화하는 그릇된 탐미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표현했다. 스스로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건 미련한 짓이다. 스트로슨은 “각 이야기를 연결해 하나의 요약본으로 만들기보다 여기저기 잡다하고 흩어진 이야기들을 살피는 것이 더 낫다”고 제안했다. 스트로슨은 ‘나’를 극장에 비유했다. ‘나’란 내 속의 여러 캐릭터들이 필요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대일 뿐이다.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면 구체적 기술을 배울 때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뉴욕시립대 철학과 교수는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을 끌고 와 ‘통제’를 키워드로 제시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한 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뜻대로 풀릴 때는 즐기고,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일이 잘 풀린다고 필요 이상 즐거워할 필요도, 필요 이상으로 실망할 필요도 없다. 담담해야 한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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