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ㆍ수당 연계 새 평가인증
보육교사용 필수 항목으로 지정
아파트 단지내 어린이집
입주자 동의 없으면 변경 못해
“다양한 상황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공청회 한번 없이 밀어붙여” 비판
“선생님, 화장실! 화장실!”
인천 부평구 삼산동 아파트단지에 위치한 어린이집. 11일 오후 1시, 낮잠시간이 지나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칭얼대며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차례대로 화장실 앞에 줄을 서 볼일을 본 아이들은 이내 다시 생기를 찾아 조잘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진한 아이들과 달리, 어린이집 원장 김옥주(56)씨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멀쩡한 어린이변기를 없애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요.”
정원이 48명인 이 어린이집에는 여아변기(좌변기)와 남아변기(소변기)가 2개씩 설치돼 있다. 어린이집 설치 기준에 따라 여아는 15~20명당 1개씩, 남아는 10~15명당 1개씩 변기가 설치돼 있어야 하니 적정 개수인 셈인데, 난데없이 이 중 하나를 폐쇄시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새로운 어린이집 평가인증 통합지표에 맞춰 원내에 성인용 변기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기 때문.
‘어린이집 평가인증’은 지방자치단체와 한국보육진흥원 관계자가 ▦보육과정 및 상호작용 ▦보육환경 및 운영관리 ▦건강ㆍ안전 ▦교직원 등 지표를 바탕으로 현장평가를 한 뒤 등급(A/B/C/불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지난해 11월 도입된 ‘제3차 어린이집 평가인증 통합지표’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원내에 무조건으로 보육교사를 위한 휴게실과 성인용 변기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항목이 어린이집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현장 얘기다.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대부분 어린이집은 관리사무소와 건물을 겸하고, 교사들은 이 공용건물에 설치된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에 근무하는 보육교사 A씨는 “어차피 교사들은 관리사무소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왜 굳이 새로 성인용 변기를 아이들과 같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만들라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오히려 아이들과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교사 입장에서는 더 불편하다”고 말했다.
더 큰 난관은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의 경우 사유재산이 아닌 아파트 주민공동시설이라 용도 변경을 하려면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입주자들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 휴게실 설치 역시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렇다 보니 조리실 옆 1㎡도 되지 않는 빈 공간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 놓으면 휴게실로 인정해주겠다는 식의 주먹구구 평가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인증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각종 지원금과 보육교사 장려수당 등이 연계돼 있어서다. 경기 고양시 한 사립어린이집 원장 박모(54)씨는 “우리 지역구만 해도 평가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은 월 10만원 정도의 지원금과 조리원 인건비 월 20만원, 교재ㆍ교구비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는데 인증을 받지 못하면 아무 혜택이 없다”라며 “일반 원장들 대상 공청회 한번 없이 제도를 밀어붙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복지부 보육기반과 관계자는 “전국에 어린이집이 4만개인데, 표준지표를 다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하는 부분, 지나쳤던 부분인 것을 인정하며 현장 상황에 맞게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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