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부족” 유해송환회담 불참
장성급 회담은 9년 4개월 만
미국과의 유해 송환 실무회담에 불참한 뒤 장성급 회담 개최를 역제안한 북한의 의도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장성급 회담으로 판을 키워 북미 간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논의할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국무부는 12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차 방북 당시 북측과 합의했던 미군 유해 송환 회담을 15일로 연기하되 장성급 회담으로 하자는 북측 제의를 받아들였다. 북한군과 유엔군사령부 간 장성급 회담이 열릴 경우 2009년 9월 이후 9년 4개월 만이다.
북측은 회담 연기 이유로 ‘준비 부족’을 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송환 예정된 미군 유해는 100~200구로 전망된다. 1990년부터 북미관계 악화로 유해발굴 및 송환이 중단된 2005년까지 돌아온 미군 유해가 총 334구인 데 비하면 역대급 규모다. 이례적으로 많은 유해 송환을 추진하던 북한이 물리적으로 준비가 덜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미국 측이 수주 전 임시운구함으로 쓸 나무상자 100여개를 판문점에 이동시킨 점, 미군이 맡기로 한 유해 분류 등을 제외하고 북측이 준비할 송환 절차는 비교적 간략하다는 점 등을 볼 때 북측이 기술적 이유로 회담을 연기했을 개연성은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오히려 북측이 장성급 회담으로 대화 판을 키워 유해 송환과 더불어 군사적 긴장 완화 의제로 논의를 확장하려 했을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3일 “북한으로선 유해 송환을 지렛대 삼아 군사적 긴장 완화 관련 논의 틀을 하나라도 더 마련하려고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측이 원하는 6ㆍ25전쟁 종전선언의 경우 정치적 성격이 강해 장성급 회담에서 논의하긴 무리지만,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사 장성급 인사가 나온다면 북측은 종전선언을 거론해 여론을 환기시키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측이 단순히 미국의 반응을 점치기 위한 신경전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일 회담 연기 자체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지만 돌출 행동을 일삼아 온 북한의 경우 미국 측이 이 정도는 용인할 것이란 계산이 섰을 수 있다. 실제 미국 정부는 회담 전환을 바로 받아들인 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공개, 대화의 끈을 이어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상 간 합의문에 명시한 유해 송환 협상을 제때 준비하지 않고 미룬 것은 신의성실에 반하는 문제”라며 “절차상 이행이 어려운 합의가 아님에도 협상 지연용으로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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