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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별세] 분단시대 관통한 작가... 남북 경계 없는 '하늘 광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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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별세] 분단시대 관통한 작가... 남북 경계 없는 '하늘 광장'으로

입력
2018.07.23 20:03
수정
2018.07.24 00:0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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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최인훈 작가
젊은 시절 최인훈 작가

20대에 쓴 ‘광장’, 남북 어디서도

유토피아 못 찾은 지식인 좌절 그려

‘소설가 구보씨…’ ‘회색인’ ‘화두’ 등

독창적 작품 쓰며 실험 거듭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 넘어 미래로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과 북의 정상이 파란 도보 다리를 산책하던 순간은 차라리 비현실적이었다. 어른거리는 연두 빛을 배경으로 파란 다리 위에서 대화를 나누던 저 묵음의 장면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만약 그 장면을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보았다면, 남도 북도 거절하고 제3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몸을 던지지는 일을 멈추었을까? 역사에 있어서 가정이란 무력하고 때로 잔인하다. 이명준이라는 분단 시대의 상징적인 지식인을 만들어낸 작가 최인훈은 그 장면을 어떻게 보았을까? 최인훈이야말로 문학을 통해 ‘다른 역사’를 꿈꾸었던 첨예한 정치적 상상력의 소유자였으니까. 안타깝게도 작가는 암투병 중이었고 그 장면을 보았겠지만, 그 뜨거운 소회를 우리에게 직접 전해줄 마지막 기회를 갖지 못했다. 작가 최인훈을 잃었다는 것은 분단 상황에 대한 깊은 사유의 언어를 잃었다는 것이며, 하나의 ‘뜨거운 역사’를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함경도 회령 출신으로 원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작가는 고등학교 때에 한국전쟁을 경험한다. 1950년 12월, 그의 가족들은 원산항에서 해군함정 LST를 타고 월남한다. LST에 승선하기 위해 원산항에 모여든 사람들을 목격한 그의 원체험은 압도적이었다. 10대의 작가가 거대한 해군 수송선을 타고 월남하던 그날 밤, 동해 바다의 불안한 어둠과 부산항을 대면했을 때의 전율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작가는 이 경험을 필생을 통해 날카로운 문학적 질문으로 다듬어나간다. 소설 ‘화두’의 한 장면에서 거대한 수송선이 밤바다 위를 지나고 배멀미로 신음하는 사람들이 지독한 냄새를 풍길 때, 미친 사람이 공산 치하의 노래를 부른다. 역사는 이 노래처럼 참담한 광기에 사로잡힌 것이었으나, 문학은 그 역사의 광기로부터 사유하는 인간의 위엄을 보존한다.

2017년 2월 24일 오후 열린 서울대 졸업식에서 최인훈(오른쪽) 작가가 명예졸업증서를 수여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2월 24일 오후 열린 서울대 졸업식에서 최인훈(오른쪽) 작가가 명예졸업증서를 수여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인훈(왼쪽부터) 작가가 동료 작가 박완서 이제하와 함께 199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인훈(왼쪽부터) 작가가 동료 작가 박완서 이제하와 함께 199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가 20대에 써낸 ‘광장’은 단지 분단 현실에 대한 고발이 아니었다. ‘광장은 있고 밀실이 없는’ 북과 ‘밀실만 있고 광장이 없는’ 남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분단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이었으며, 보편성을 갖는 질문이기도 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라고 작가는 쓴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삶과 사랑의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한 이명준의 실패는 한국현대사의 실패이며, 충만하고 지속적인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존재의 좌절이다. 이명준의 유토피아는 남과 북의 국가체제 내에서는 실현될 수 없었으며, 그 정치적 상상력의 끝에서 소설은 현실을 넘어서는 다른 삶과 사랑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최인훈을 통해 참혹한 한국현대사는 ‘참혹’ 이상의 성찰과 사유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광장’을 쓸 수 있었던 것은 1945년에서 1950년까지의 문제적인 시기를 북한에서 보냈기 때문이었고, 1960년 4ㆍ19 혁명 이후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힘입은 것이었다. 분단시대 최고의 문제작인 ‘광장’은 분단과 4ㆍ19라는 한국현대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온몸으로 경험한 최인훈이라는 작가가 아니면 탄생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최인훈은 소설의 서문에서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 아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쓴다. 후에 작가는 ‘광장’을 개작하는 일을 집요하게 거듭하는데 이것은 이 작품이 작가에게 갖는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이 개작 과정을 통해 작가는 ‘광장’의 이야기를 현실의 좌절을 넘어 끝내 실패할 수 없는 사랑의 서사로 변모 시킨다.

최인훈은 또한 매우 현대적인 작가였고 문학적인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였다. 그는 도시적 삶과 지식인의 내면에 대한 관심으로 박태원의 소설을 차용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썼고, 상상과 무의식의 세계를 오가며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르는 에세이적인 문체실험을 보여준 ‘회색인’ ‘서유기’ ‘구운몽’ 등을 썼다. 가상 역사 방식의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소설 ‘태풍’과 ‘총독의 소리’를 썼고, 한국희곡사의 기념비적인 저작인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를 비롯한 일련의 희곡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1994년의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그의 마지막 대작인 ‘화두’는 해방 직후 북한 체제를 경험하고 좌절한 한 지식인의 개인사와 거대한 세계사적 흐름이라는 두 가지 시간대를 연결하여 ‘나’에 대한 실존적 의미를 탐구한다. 그의 사유의 출발점은 분단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나, 20세기 세계사 그리고 인류 보편의 문명사와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에 대한 심원한 사색에 도달한다.

최인훈은 은둔형 작가였다. 서울예대에서 정년을 마친 이후 그는 외부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문학을 바깥에 알리고 앞당겨 기념 하려는 노력 따위에는 발을 담그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서재에서 당대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사유를 가다듬는 일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의 문학이 미리 마감되고 정리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의 전집이 출간된 문학과지성사에서 ‘최인훈 깊이 읽기’라는 연구서를 출간하고자 했을 때도 그는 사양했다.

분단의 바다에 몸을 던진 이명준은 그 망명을 통해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이명준은 분단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의 유령에 대항하여, 자신이 유령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최인훈은 이명준처럼 국경 너머의 심해에 가라앉는 대신, 문학의 바다를 유영하며 최전선의 글쓰기를 밀고 나갔다. 이명준이 유령처럼 사라지지 않고 늘 되돌아오는 인물이 되었다면, 최인훈 문학 역시 끝없이 한국문학의 한 가운데로 돌아오는 지울 수 없는 질문으로 남았다. 최인훈에게 붙어 다니는 ‘전후 최대의 작가’, 혹은 ‘남북조 시대 작가’라는 호명은 어쩌면 이미 빛바랜 것이다. 그는 무섭도록 현재적인 작가이다. 최인훈의 문학은 분단시대의 기념비를 넘어서, 이미 다른 미래에 닿아 있다. 한국문학과 지성사는 여전히 최인훈의 거대한 질문 안에 있다.

이광호 문학평론가ㆍ문학과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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