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책참여단 100명 숙의 거쳐
교육부, 학생부 신뢰 제고 권고안 발표
‘사교육 유발’ 수상 경력 기재 유지키로
교육부가 대학입시 개선의 핵심 요소로 지목한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운영 방식이 ‘사실상 현행 유지’ 쪽으로 결론이 났다. 특히 학생ㆍ학부모에게 사교육 부담을 지워 폐지 여론이 드높았던 ‘수상경력’ 등 문제 항목들이 대거 살아남으면서 “도대체 왜 개선작업에 나선 거냐”는 비판이 비등하다. 신뢰 회복을 이유로 시민들에게 정책 판단을 맡겨 놓고 교육당국은 그 뒤에 숨어버린 것 아니냐는 진보 교육계의 반발 또한 거세질 전망이다.
불공정 핵심 수상경력 그대로
교육부는 시민정책참여단 100명이 숙의를 거쳐 마련한 학생부 신뢰도 제고 권고안을 12일 발표했다. 일단 교육 당국이 학생부 내실화 방향으로 설정했던 기재 간소화는 어느 정도 충족했다. 총 11개의 기재항목(자유학기 활동상황은 중학교만 해당)은 9개로 줄었다. 인적ㆍ학적사항을 통합했고, 부모정보도 기입하지 않기로 했다. 창의적체험활동 상황(창체)과 중복된다는 의견이 많았던 진로희망 사항은 창체 내 특기사항에 포함된다. 교과학습 발달상황 항목 세부 영역인 방과후학교 활동 역시 미참여 학생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기재가 금지됐다. 또 시민참여단은 교사 업무 부담이 크다는 비판을 받은 창체 특기사항 기재 분량을 3,000자에서 1,700자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문제는 수상경력 등 불공정한 학생부 논란의 중심에 있던 핵심 쟁점이다. 경시대회 입상 등 수상경력은 교육부가 학생부 개선을 추진하면서 폐지를 공언했던 대표 항목으로 4월 발표한 시안에도 들어 있었다. 과도한 경쟁과 상장 남발 탓에 수상경력은 사교육을 유발하는 주범으로 꼽혔고, 고스란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파행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당시 폐지 근거로 제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학생, 학부모 모두 불필요한 기재항목 1순위로 수상경력을 꼽았다.
이 문제는 시민참여단 숙의에 앞서 지난달 진행된 현장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첨예한 논쟁거리였다. “사교육을 유발하고 정규 교육과정과 무관한 수상경력은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는 주장과 “수상경력을 없애면 학종이 유명무실해진다(김혜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참여단 60.8%는 찬성(매우찬성ㆍ찬성) 의사를 밝혔고 ‘양해한다(19.6%)’는 의견까지 합치면 80.4%가 수상경력 유지에 손을 들어줬다. 물론 참여단은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으나 “수상경력을 대학입시 자료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아 학종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여지가 큰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과도한 스펙쌓기’ 부작용에 휩싸인 자율동아리 활동과 “부모 경제활동이 실적을 좌우한다”는 냉소를 낳았던 봉사활동 특기사항도 교육부 안과 달리 각각 현행 유지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항목에 반영하는 식으로 살아 남았다. 교육부가 일부 우수학생만 혜택을 볼 수 있다며 전체 학생으로 확대하기로 했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교과학습 발달상황)’ 역시 지금처럼 재능ㆍ특기가 관찰된 경우에만 기재하는 방안에 의견이 모였다.
주요 쟁점 중 기존 교육부 개선안이 관철된 사안은 소논문 기재 금지 정도이다. 참여단은 모든 교과목의 소논문(창체)을 학생부에 적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3개월 동안 뭐 했나” 현장 불만 거세져
교육부는 참여단 권고안을 토대로 학생부 최종 개선 방안을 현재 공론화가 진행 중인 대입 개편안과 함께 내달 내놓을 예정이다. 남부호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시ㆍ도교육청 의견을 취합하면 최종안에서 달라질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일부 변경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당초 참여단 결론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감안할 때 권고안 내용은 대부분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새 학생부는 내년 초ㆍ중ㆍ고 1학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교육부는 이번 권고안이 여론 합의에 의한 결과물임을 강조하지만 교육 현장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정책숙려제 1호 대상으로 선정해 3개월을 끌어 온 숙의 결과치곤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다. 고1 아들을 둔 학부모 이모(47)씨는 “수상경력과 봉사활동이 계속 학생부에 기록되는데 매달리지 않을 학생ㆍ학부모가 누가 있겠느냐”며 “불필요한 경쟁을 막겠다는 본래 목적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기류는 교육부가 여론에 기대 주요 교육정책을 정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문제 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학생부 개선안과 비슷한 결정 절차를 밟고 있는 대입 개편안의 신뢰도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현재 대입개편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 구성(550명)을 마무리하고 권역별 숙의토론회를 앞두고 있는데, 특정 시나리오을 택하는 게 아니라 학생부 개선안처럼 참여단이 단계(5점)를 나눠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박세영 전교조 학교혁신특별위원회 사무국장은 “교육부는 민주적 운영 절차만 내세워 부실 정책의 책임을 여론에 떠넘기고 시민 참여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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