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조명 예술가 브루스 먼로 방한
27일부터 열리는 ‘제주 라프’ 참가
6000평에 바람개비 모양 LED
2만여개로 구성한 설치작품 선봬
“오름의 그림자에서 큰 영감
치유와 용서의 의미 담았죠”
“제주에 와서 저 스스로를 덜 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물론 존재하고 있지만 조금 덜 존재하는 것이죠. 이런 특별한 순간은 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순간에서 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특별한 순간을 낚시질한다’고 표현합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조명 예술가 브루스 먼로가 방한했다. 그는 27일부터 10월 24일까지 90일간 제주 제주시 조천읍에서 열리는 라프(LAFㆍ제주 라이트 아트 페스타)에서 대규모 설치 작품 ‘오름’과 ‘워터 타워’를 발표한다. 작가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여는 전시다.
먼로는 수천 개에 이르는 조명 부품을 활용한 대규모 몰입형 설치작업으로 유명하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떠오르는 영감과 이미지들을 스케치북에 수집하고 기록하며 그것들을 작업의 원천으로 삼아왔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과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CNN은 그의 전시를 ‘가장 아름다운 전시 10’에 선정하기도 했다.
‘오름’은 6,000여평 대지에 2만1,500개의 바람개비 모양 LED 발광체를 꽃을 심듯이 심은 작품이다. 각 발광체는 거미줄처럼 엮여 여러 개의 서클을 만들며 장관을 이룬다. 작가가 1992년 호주 중부 울룰루 지역을 여행하며 고안했던 그의 대표작 ‘필드 오브 라이트’를 제주의 지형과 풍광에 맞게 재현한 것이다. 11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특히 “오름의 그림자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이 밀집된 곳입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제주도의 바람과 돌, 그리고 한국의 강인한 여성인 해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특히 오름은 제주에서도 매우 특별합니다. 오름을 봤을 때 호주 울룰루의 대자연을 접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오름 전체를 (조명으로) 덮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죠.“
그가 처음 제주를 찾은 것은 4년 전, 제주 라프의 주최사인 아트 플레쉬 측의 전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다. 지금까지 먼로를 초대하기 위해 몇 차례의 국제적 프로젝트가 추진됐으나,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해온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평화의 섬, 제주’의 취지에 동의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제주에 왔을 때 그는 늘 가지고 다니는 스케치북을 꺼내 거센 바람과 녹차밭이 이루는 독특한 풍광을 기록했다.
‘오름’과 함께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워터 타워’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21세 때 라이얼 왓슨의 저서 ‘인도네시아 명상 기행’을 읽고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생수병을 이용한 조명 설치 작품으로, 병을 쌓아 만든 39개의 기둥에서 음악과 빛이 흘러나와 공감각을 자극한다. 작가는 ‘오름과 ‘워터 타워’를 통해 “치유와 용서의 메시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는 2014년 방한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들었다며 “워터 타워가 말하는 것은 사람들 간의 연합”이라고 설명했다. “각자의 타워는 인간을 상징합니다. 많은 사람, 많은 사회가 모여 마치 노래하고 찬양하는 듯한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세상이 좀더 나은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예술 작품이 “세상을 바꾸는 힘”에 대해 강조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위험한 세상을 살고 있죠. 히피처럼 보이고 싶진 않지만 우리는 다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그건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트럼프와 푸틴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듣지 않겠지만요(웃음).”
이번 제주 라프에서는 총 3만여 평의 대지에 대형 조명 예술품들을 설치해 화려한 야간 볼거리를 제공한다. 먼로의 작품 외에도 젠 르윈, 탐 프루인, 제이슨 크루그먼 등 작가 6인의 대표 작품 14점이 야외 전시공간에서 소개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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