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열리는 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규정은 엄중하다. 테니스 코트에 가까이 오는 이들이라면 관중이라도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야 한다. 갑자기 착신음이 울리거나 통화로 경기장이 소란스러워지면 선수들의 경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 윔블던에선 예외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28년만에 월드컵 4강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 오브 런던’ 등에 따르면 잉글랜드와 크로아티아의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전이 열리는 11일 저녁 윔블던 코트 관중들은 휴대전화와 태블릿으로 월드컵 경기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윔블던 대회를 개최하는 올잉글랜드클럽의 리처드 루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만약 다른 이들의 테니스 관람을 방해하지 않고 이어폰으로만 방송을 청취한다면 (윔블던 현장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은) 괜찮다”라고 말했다.
올해 윔블던은 잉글랜드의 예상치 못한 선전에 영향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와 스웨덴의 월드컵 8강전이 열리던 7일 윔블던 센터 코트의 관중석 3분의2는 비어 있었다. 윔블던을 보러 온 관중 대부분은 8강전 경기 시간에 맞춰 인근 펍으로 향했다. 경기장에 참석한 관중 가운데 일부도 몰래 휴대전화를 들고 월드컵 경기를 지켜봤다.
올잉글랜드클럽은 15일 오후 2시(현지시간ㆍ한국시간 오후 10시)로 예정된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 시간을 바꾸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월드컵 결승전이 이날 오후 4시(한국시간 16일 0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시간은 바꾸지 않기로 했다. 또 테니스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현장 스크린을 활용하거나 새 방송 화면을 설치하는 방안도 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테니스 행사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뭔가 특별한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관중들이 즐기길 원한다”며 “잉글랜드 팬들이 축구 경기 결과로 흥분해 소리를 내는 것에는 선수들이 불만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 윔블던 8강에 진출한 세리나 윌리엄스는 타임스에 “잉글랜드인들이 흥분한 것을 보니 절로 잉글랜드 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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