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기계발 강사가 회사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이 회사가 내 회사라 생각하고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그다지 감흥이 없어 보인다. 심지어 강의를 마친 그 강사는 어느 직원에게 이런 핀잔도 받았다. “솔직히 제가 회사 주인도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갖습니까.” 요즘 말로 팩폭(Fact 폭력)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한번 생각해 보자. 주인은 어차피 주인이니 당연히 주인의식을 가질 것이다. 그럼 어느 공간ㆍ상황의 진짜 주인이 아닌 사람은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설령 주인의식을 갖는다 해도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외부 조건에 따라 주인이고 아니고를 따지지 말고 모든 상황에서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설파한 이가 당나라 고승 임제선사(臨濟禪師)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立處皆眞)’
임제선사의 설법을 정리한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로, ‘어느 장소에서든 주체적일수 있다면(주인의식을 갖는다면), 그 서는 곳 모두가 참된 곳이다’라는 뜻이다. 장소가 바뀌면 우리를 둘러싼 외형적인 모습(외물: 外物)이 바뀐다. 외물이 바뀌면 이를 대하는 내 마음자세도 바뀐다. 익숙함이 사라지니 모든 것이 생소하다. 경계심이 절로 생겨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위축된다. 하지만 임제선사는 말한다. 외물(外物)에 휘둘려 몸과 마음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스스로 몸과 마음을 부리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어디서든 나그네나 머슴이 아닌 주인 같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살라고 말이다.
어디에 가건 지금 있는 그 곳이 내 자신의 자리임을 깨닫는 것은 어떤 실천적 의미가 있을까. 아마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재 내가 처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거기서 의미와 행복을 찾으라는 가르침이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마음 아파하기보다는 현재 갖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노력하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수처작주’에서 ‘수처(隨處: 어느 장소)’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장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명확한 현실직시를 바탕으로 자기계발의 자세를 갖는 것이 수처작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소동파(蘇東坡)는 한때 중국의 최남단 오지 해남도(海南島)에서 7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하지만 그의 긍정적 성품은 그를 절망에 빠뜨리지 않았다. 유배기간 동안 그는 주민들과 동화되어 유쾌한 교제를 즐겼고 이는 그의 작품세계를 넓히는 역할을 했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도 유배 9년의 세월을 학문과 예술을 승화하는 계기로 삼았고,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은 그 기간 동안 500여권의 책을 저술하며 값지게 보냈다. 이것이야말로 수처작주 입처개진의 명징한 사례 아닐까.
책을 뒤적이다보니 수처작주의 구체적인 행동방식을 제시한 이도 있었다. 명나라 말기 양명학자 육상객(陸湘客)은 수처작주를 위한 행동방식으로 육연(六然)을 주장했다.
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흔들리지 말고 초연하며(자처초연, 自處超然)
사람에 따라서 감정을 달리하지 말고 초연하며(처인초연, 處人超然)
일이 많아 바빠도 일에 쫓기지 말고 초연하게(유사초연, 有事超然)
일이 없더라도 불안하게 생각 말고 초연하게(무사초연, 無事超然)
뜻을 이루고 성공해도 들뜨지 않고 담담하게(득의담연, 得意澹然)
최선을 다하였으나 실패했더라도 태연스러워라 (실의태연, 失意泰然).
찬찬히 읽어보니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입으로만 외치는 주인의식이 아닌 진정한 행동이 뒤따르는 주인으로서의 몸가짐, 마음가짐에 도전해 보리라 다짐해 본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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