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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생을 결정한 순간

입력
2018.07.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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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 십 년 가까운 연애 끝에 결혼한 연인이 있다. 남자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여자는 뮤지컬에 출연하는 무용수다. 나는 그간 둘의 지인으로 지내왔기에 그들의 관계를 속속들이 듣고 봐서 알고 있다. 긴 연애 기간을 버텨낸 연인이 전부 그렇듯이, 그들은 대체로 다정했지만 많은 시간은 순탄치 않았고, 긴 기간 동안 헤어져 지내거나 때로는 관계가 소멸할 것처럼 다투기도 했다. 당연히 각자 다른 사람을 만난 적도 있고 그 사이에서 상대방의 연인을 알고 만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결국 정해놓은 자리였던 것처럼 서로에게 돌아갔고, 십 년의 우여곡절 끝에 연애의 종지부를 찍고 부부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커플은 결혼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역경과 많은 사람들을 거쳐 어쩌다 서로에게 마음을 확정해 결혼까지 하게 되었냐고 누군가 물으면 꼭 어떤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뮤지컬 무대 위에서 연기하던 아내의 이야기이다.

“그건 찰나의 느낌 같은 한순간이었어. 인생의 결심이란 것은 단 한순간이더라고. 나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이 남자는 객석에 있었어.”

나는 한 번도 그녀의 공연을 본 적이 없지만, 그녀가 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지 않음을 안다. 그녀는 대부분 포스터나 홍보 자료에 이름이 실리지 않는 단역 무용수로 출연한다.

“나는 그날 주인공이 아니었어. 주인공은 무대 중앙에서 사랑의 노래를 목이 터지게 부르고 있었지. 나는 말하자면 무용수A였어. 무대 왼편 구석에서 다른 무용수들과 함께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는 율동을 하던 참이었어. 그때, 나는 문득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어. 그리고 객석을 내려다봤지. 어둑어둑한 만석의 객석에 약간의 불빛이 비치면, 무대에 열중하고 있는 수많은 얼굴이 보이거든. 그 많은 얼굴들은 당연히 한 방향으로 무대 중앙에서 열창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었어. 극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그래야 했으니까. 거기서 나는 즉시 본능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을 찾아냈어. 단 한 개의 고개가, 단 한 개의 시선이 그 방향을 보지 않고 있었거든. 그 툭 튀어나온 듯한 시선 한 개는 내 것이었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 남자가, 나만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극의 흐름과는 관련이 없는 무용수A만을, 고작 감정을 더해주는 많은 무용수 중 한 명의 무용수A를, 누구도 유심히 지켜보지 않고 단지 배경으로 스쳐가는 무용수A를, 왜냐하면, 이 남자에게 나는 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었으니까. 처음부터 이 남자는 극은 보지 않고, 평범한 관객이라면 신경도 안 쓸 나만 바라보고 있었어. 내가 호흡은 어디서 하는지, 발은 어디에 딛고 손은 어떻게 뻗고 표정은 어떻게 짓는지, 혹여나 실수하지는 않는지.”

그녀는 언제나 단호하고 아련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보통 이 회상까지 나오면 사람들은 침묵하며 그녀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

“내가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이 남자는 당신 말고는 무대에서는 아무도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했지. 그래서 그것은 극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다만 당신만이 춤을 추는 무대였기에 나는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노라고. 나는 곧 결혼을 결심하고, 이 남자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지. 그렇게 인생을 결정했던 것은 단 한순간이었어. 그 어둑한 객석에서, 그 다른 곳을 바라보는 수많은 얼굴과 고개들 사이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나만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얼굴을 발견했을 때, 그때가 그 하나의 얼굴로 내 운명을 결정했던 순간이었던 거야.”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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