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건 설레는 일이다. 국민 1인당 연간 두 번 이상 항공편을 이용한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이미 보편화한 이동수단이지만, 비행기 객실 창에서 바라보는 하늘 위 풍경은 항시 신기하기만 하다.무엇보다도 3만~4만피트(약 9,100~1만2,200m) 상공에서 이동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객기 객실 곳곳에 첨단 기술이 담겨 있을 것이란 짐작을 하게 된다. 단순하게 보이는 객실 창에도 과학이 숨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객기 객실창에 숨은 과학원리를 살펴본다.
여객기 좌석에 앉으면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창이다. 지난해 대한항공에서 도입한 보잉787-9의 경우 기존 여객기 창보다 크기를 20%가량 키워 바깥 경치를 감상하기 더 좋아져 승객들의 창가 자리 선호도 더 높아졌다. 큰 창은 객실 천장이 높아진 느낌도 들어 폐쇄감을 줄여주는 효과도 있다.
여객기 창에는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 들어가 있다. 우선 재질부터 특별하다. 비행기는 난기류와 공기 저항을 피하고자 높은 고도에서 운행하는데, 그러다 보면 객실과 외부의 온도나 기압 차가 커 기체 외부의 물리적 변화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또 비행 중 새 등 다른 물질이 와 부딪히는 경우도 잦다. 그래서 선택한 창 재료는 강화 아크릴이다. 유리보다 가벼우면서도 유연성이 커 잘 깨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객실 창문은 이런 아크릴 창이 3개가 결합해 이뤄진다. 외부와 중간 창은 외부보다 높게 유지되는 기내 기압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내부창은 방음과 보온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ㆍ외부 압력 차가 심해지고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으면 깨져 큰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이런 위험을 방지하는 게 창 내 구멍이다. 객실 창을 자세히 보면 중간 창 아래 부분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내부창과 외부창 사이에 형성돼 있는 공기를 구멍으로 순환하도록 해 자연스레 압력을 조절하게 된다. 이 구멍을 ‘브리더 홀’(breather holeㆍ숨구멍)이라 부른다.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바깥쪽 창만 깨지고 나머지 두 장은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성에나 김이 적게 서리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비행기가 순항 고도에 올라가면 객실과 외부 사이에는 약 섭씨 70도 정도의 온도 차가 발생, 김이 서리거나 성에가 생기게 된다. 이 구멍을 통해 공기가 순환하며 3장의 유리창 사이의 온도 차를 줄여 물 또는 얼음 결정이 생기는 걸 막는다. 이 구멍은 1997년 다임러크라이슬러 항공사가 특허 출원했으며 그 이후 제작되는 모든 객실 창에 적용되고 있다.
조종석은 운항을 책임지는 만큼 객실 창과는 다른 기술이 적용돼 있다. 원천적으로 성에나 김이 서리지 않도록 창 안쪽에 초박막 전도체를 입혀 전기가 흐르게 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또 앞창은 여러 번의 충격에도 상처가 나지 않는 특수재질의 강화 글라스와 2㎜ 정도의 비닐, 20㎜ 이상의 아크릴수지 등을 5중 이상으로 겹겹이 배치해 강한 압력 차를 버티고, 만일 외부 창이 깨지더라도 나머지 창으로도 견디도록 고안돼 있다.
항공기 제작사들은 이런 창의 안전도를 확인하기 위해 3㎝ 크기의 얼음을 특수 제작한 후 공기총으로 창에 쏘기도 하고, 새가 부딪히는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죽은 닭을 시속 600~700㎞로 던지는 등 극한의 테스트를 벌이고 있다.
비행기 창에는 이 외에도 안전을 위해 여러 가지 과학적 원리가 적용된다. 보통 창문은 사각형 모양으로 제작해 편의성과 조망 범위를 최대화하지만 비행기 창은 둥글다. 이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위한 디자인적 요소가 아니다. 기상 악화나 내ㆍ외부 기압 차가 커지면서 생기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사각형 창은 구조상 압력이 형태의 끝부분인 꼭짓점에 몰리게 돼 있다. 구조 자체가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큼 깨지기 쉽다. 반면 둥근 창은 모서리가 없어 압력이 분산돼 상대적으로 깨질 가능성이 낮아진다.
비행기의 둥근 창문은 과거 비극적 사건의 교훈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드 하빌랜드 DH 106 코멧’은 1949년 5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취항한 상업용 제트 여객기였다. 그런데 1953년 5월 운항 중 공중 분해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이듬해에도 2건의 공중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모의시험 결과 사각형 비행기 창문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압력이 꼭짓점에 집중돼 창이 깨지면서 여객기 기체까지 함께 찢겨 나간 것이다. 이 때부터 비행기 창은 둥근 형태로 제작됐고, 문도 모서리가 없는 둥근 형태로 바뀌게 됐다. 항공기 외에도 우주왕복선, 심해잠수정 등이 둥근 형태의 창을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겹 창과 창덮개의 역할
객실 창에 붙어 있는 덮개도 점차 첨단화돼가고 있다. 덮개는 사실 빛을 가리는 단순한 용도인데, 손으로 여닫기도 불편하고 빛의 밝기가 조절되지 않는다. 그래서 등장한 게 투명도 조절이 가능한 창문(Dimmable Window)이다. 3겹 창 중 외부창과 중간창 사이에 젤 형태의 특수물질(Electrochromatic Material)을 삽입한 후 전류가 흐르는 장치를 부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도록 고안돼 있는 창이다. 전압을 가하지 않으면 액정분자가 무질서하게 배열돼 있어 빛을 산란시켜 창이 불투명해지고, 전압을 가하면 전기방향으로 정렬되면서 투명하게 바뀌게 된다. 국내에선 보잉 787기에 이 창이 첫 적용 됐으며 5단계의 투명도 조절이 가능해 장시간 이동하는 승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자동차, 건축물 등에 이미 적용돼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이라며 “여객기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완성체이지만, 안전을 위해 더욱 꼼꼼하고 다양한 검증을 거쳐야 하므로 첨단 기술 적용이 상대적으로 늦는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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