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최근 북한 비핵화 용어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대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FFVD)를 사용한 것은 한국의 조언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5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지난달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이 CVID라는 용어를 버리고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날 2명의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조언으로 CVID에서 물러섰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미 정부 관계자들과의 회의에서 CVID는 북한이 정권 교체로 이어질 수 있는 일방적인 무장해제 방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CVID 대신에 ‘상호 위협 감소’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 당국자는 북한이 난색을 표명할 수 있는 만큼, 수백 명의 조사관들이 북한에 들어가 핵미사일 시설을 사찰하는 관례적인 방식은 어려울 것이란 견해도 피력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한국 국책 연구기관의 고위 관계자도 지난달 초 워싱턴을 방문해 국무부 관계자를 만나 같은 취지로 조언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기자들과 만나 “CVID는 용어 자체가 갖는 역사적 배경이 있어서 북한이 대북 공격의 상징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며 “북한이 CVID를 거부하는 게 비핵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을 풀어서 사용할 것을 조언했다”고 덧붙였다. CVID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사용한 용어로서 북한이 굴복 수준의 일방적인 핵 폐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6ㆍ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판문점 실무 협상에서 북한 대표단이 CVID를 강력하게 거부해 미국으로서도 협상 진전을 위해선 북한의 거부 반응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식 태도를 견지한다면 북한 문제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계속 구하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현실 인식도 작용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처렴 변화된 유연한 태도를 갖고 이날 세 번째 방북길에 오른 만큼 북한의 화답 여부가 주목된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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