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에게 입법·정책개발 지원 명목으로 지급한 예산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패소했다. 법원이 특수활동비에 이어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국회 예산들에 또 한번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국회의 오랜 관행인 ‘깜깜이 예산’ 운영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될 전망이다. 국회의 입법ㆍ정책개발비는 특수활동비처럼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지만, 집행 내역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깜깜이 예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
5일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문용선)는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국회 측 항소를 기각했다.
하 대표는 지난해 6월 국회에 2016년 6월∼2017년 5월 집행된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영수증과 계약서, 집행내역서 등 증빙서류의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국회 측은 ‘정보공개 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거나,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될 경우 정보 비공개로 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을 근거로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하 대표는 소송을 제기했고, 국회 측은 재판과정에서 “집행내역은 이미 공개했고 증빙서류에는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다수 기재돼 공개 시 의원실의 입법 및 정책개발활동을 현저히 제약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2월 열린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 유진현)는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 기재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정보에 대한 비공개 결정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지급받은 개인의 성명, 소속, 직위를 공개함으로써 예산의 투명한 사용과 국민들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공익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공개한다고 해서 특정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 사무처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지난해 국회 사무처가 입법ㆍ정책개발비로 편성한 예산 규모는 86억원으로 특수활동비(81억원)보다 더 많다. 집행 내역이 공개 안되는 항목으로는 ▦업무추진비(86억원) ▦예비금(16억원) ▦정책자료집 인쇄ㆍ발송비(46억원) 등이 꼽힌다.
특수활동비는 참여연대가 국회를 상대로 제기한 ‘2011~2013년 특활비 세부내역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이 대법원에서 승소했고, 참여연대는 국회측에서 받은 특활비 지출 내역을 이날 공개했다.
하 대표가 추가로 소송한 ‘2016년 6월~12월 특수활동비ㆍ업무추진비ㆍ예비금 사용 내역기공개 처분’ 취소 소송은 오는 19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국회는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잇따른 패소에도 법정 대응을 이어가며 시간 끌기 전략을 펴왔기 때문이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