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재능과 노력의 결과다, 성공의 과실은 당연한 대가다, 이걸 못 마땅해 하는 건 남 잘 되는 꼴 못 보는 자들의 시기와 질투일 뿐이다.’ 실력주의, 능력주의라 불리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다. 재능 없고 노력 않는 자 때문에 답답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라 실력주의는 ‘사이렌의 노래’처럼 솔깃하다.
하지만 실력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재능, 노력, 실력의 실체가 사실 모호해서다. 재벌 2ㆍ3세의 경영능력을 비웃고, “돈도 실력이니까 너네 부모를 원망하라”던 정유라에 분노하고, 강원랜드 채용비리 뉴스를 보고 짜증내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이런 건 또 어떤가. ‘흙수저’라 자학하는 당신에게 “사실 당신도 남들에 비하자면 운 좋은 사람”이라 한다면? 헬조선에서 내가 얼마나 불행한 지 최대한 빨리, 크게 울어대는 게 유행인 한국에서, 이게 먹힐 얘기일까.
그래서 실력주의 비판은 오래됐으나 선뜻 이해 받지 못하는 주제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3장에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사례를 분석하면서 존 롤스의 ‘정의론’ 논리를 이어받아 ‘개인의 실력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뒀다. 샌델의 책이 무려 100만부나 팔렸다는데 이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이 행운아임을 알라는 철학적 논의라 너무 고상하기 때문일 게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로버트 프랭크 지음ㆍ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288쪽ㆍ1만5,000원
그래서 이 책 최고 장점은 저자가 경제학자라는 사실이다. 미 연준 의장 벤 버냉키와 함께 경제학 교과서를 쓸 정도니 주류 학자다. 이 책 자체가 ‘주류 학자가 어떻게 실력주의에 기반한 아메리칸 드림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두 번째 강점은 경제학자이기에 롤스나 샌델처럼 논증을 위해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는 사고실험 대신, 재능ㆍ노력ㆍ행운과 성공의 관계를 수학적 모델로 풀어낸 8쪽짜리 모의실험 결과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실험은 책 맨 끝 ‘부록 1’에다 실어뒀는데, 그 덕에 이 책은 ‘부록 1’이 본문이고 본문은 ‘부록 1’에 딸린 각주 같기도 하다.
마지막 장점은 균형감각이다. 저자는 실력주의를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의 음모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건 오직 내 땀과 눈물로 이뤄낸 거야’라는 착각과 아집이, 가진 자들뿐 아니라 중산층은 물론, ‘이만큼 스펙 쌓은 나는 자격 있다’는 식의 논리로 흙수저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다면, 거기엔 긍정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바로 “성공에 있어서 행운의 역할을 부정”함으로써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도록 박차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에 기대지 않아야 최선을 다한다.
결론은 이거다. 성공에 자부심을 갖되 “한 인간으로서 그것이 말도 안 된다고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운과 노력에 대한 이런 이중적 관점은 필수다. “실력이 곧 정의”라 외치는 바람에 겸손함과 배려가 사라지는 걸 넘어, 실력이란 이름으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세태 속에서 꼭 필요한 책이다. 스스로 좀 배웠다 생각하는 이들에겐 아예 교재로 읽혔으면 좋겠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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